오스트리아-튀르크 전쟁 (1788년~1791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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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당시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Ekaterina II, 1729-1796)와 동맹을 맺고 있던 오스트리아 황제 [[요제프 2세]](Joseph II, 1741-1790)는 전쟁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전쟁 초기 오스트리아군은 [[카란세베스 전투]](Battle of Karánsebes;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군끼리의 오스트리아;;;전투)에서 아군에 오인 사격을 가해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 뒤, 오스만 제국이 주도권을 잡았다. 오스만군은 오스트리아군을 [[메하디아]](Mehadia)에서 몰아낸 뒤 1789년, [[바나트]](Banat)로 진군했다. 하지만 이후 주도권은 오스트리아에 넘어갔다. 야전원수 [[에른스트 기데온 프라이헤르 폰 라우돈|라우돈]](Ernst Gideon Freiherr von Laudon, 1717-1790)이 이끄는 오스트리아군은 3주에 걸친 포위 끝에 [[부다]](Buda)를 점령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가 [[시스토바 조약]](Treaty of Sistova, 1791)을 통해 얻은 것은 아주 적었다. 밀러(Miller)는 "[[오르소바오르쇼바]](Orşova)와 크로아티아 국경 부근에 위치한 작은 두 마을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언급했다.
 
오스만의 입장에서 이 전쟁은 재앙적이었는데, 이는 오스트리아에게 상실한 영토 때문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동맹국인 러시아가 거둔 승리 때문이었다.([[러시아-투르크 전쟁 (1787년-179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