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 (동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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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위나라의 [[조비]](曹丕)가 세 방면으로 침공해올 때 주연은 강릉을 수비하게 되어 [[조진]](曹眞), [[하후상]](夏侯尙), [[장합]](張郃)과 대결했다. 원군으로 온 [[제갈근]](諸葛瑾)이 [[하후상]]에게, [[손성]]이 [[장합]]에게 격파당하고 강릉은 위군에게 포위되어 고립되었다. 심지어 성 안에는 유행병이 퍼져 군사들 중에서 싸울 수 있는 병사는 겨우 5천 명뿐이었다. 그러나 주연은 군사들을 격려했고, 적군의 약점을 찾아 진영 두 곳을 공격해 물리쳤으며 틈을 타서 위군과 내통하려던 강릉현령 [[요태]]의 음모를 발각하고 그를 처단하였다. 적군의 포위는 반년동안 계속되었지만 위군은 결국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철군하고 말았다. 이 공방전으로 인해 주연의 이름은 위나라에 알려지게 되었고, 당양후로 책봉되었다.
 
241년 번성을 포위했지만, 형주자사 [[호질 (위나라조위)|호질]](胡質)의 원군이 오자 퇴각했다.
 
242년 조중 정벌에 나섰는데 형주자사 [[호질 (위나라조위)|호질]]과 위나라 장수 포충이 저항하였다. 포충이 요충지를 차단해 퇴로를 끊으려했고, [[호질 (위나라조위)|호질]]은 포충을 계속 지원했다. 그러나 주연은 정예병 800명으로 역습을 가했고 포충은 불리함을 알고 [[호질 (위나라조위)|호질]]과 함께 물러났다.
 
246년 또 다시 조중을 침공에서는, 퇴로를 끊은 위나라 장수 [[이흥]] 등을 역습으로 물리쳤다. 이 공으로 좌대사마, 우군사로 승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