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흠: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50번째 줄:
문흠은 오나라에 망명하였으면서도 여전히 교만하였으므로 [[여거]](呂據)·주이 등의 미움을 샀으며, 오직 [[손준]]만이 문흠을 비호했다.
 
이듬해([[256년]]), [[손준]]에게 위나라를 칠 계책을 내었다. 8월, 여거·[[유찬 (정명)|유찬]](劉纂)·주이·[[당자]](唐咨)와 함께 회수와 사수로 들어가도록 명령을 받았다. [[손준]]이 죽자 여거·[[당자]]와 함께 표를 올려 [[등윤]](滕胤)을 승상으로 임명하도록 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조서를 받아 [[유찬 (정명)|유찬]]·[[당자]]와 함께 여거를 체포하고자 쳤다. 여거는 자살했다.
 
===제갈탄의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