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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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20전후 때 [[송충]](宋衷)으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오서에 따르면 총명한 자질을 가져 남과 응대하는데 기민하여 그 말은 조리에 밝다는 평가를 [[왕찬]](王粲)에게 받은 것을 계기로 형주의 인사들 사이에서 명성을 얻었다. 나이 30 이전에 형주목 유표의 초빙으로 관직으로 나와 강하군(江夏郡)의 종사로 임명되었다. 당시 강하군은 관리들의 횡포에 의해 반준은 그들을 법에 따라 처벌했고, 민중은 그의 엄격한 법 적용을 두려워하며 그 후, 상향현(湘鄕縣)의 령으로 뛰어난 치적을 올려 사람들의 평판은 지극히 높았다.
 
유비가 형주를 다스릴 때 그의 부하가 되어 형주종사를 맡았다. 유비가 촉으로 들어간 뒤 형주에 남겨져 주의 사무를 처리하는 일을 했다. 유비에게는 신임을 받았지만, [[양희]](楊戱)전의 계한보신찬(季漢輔臣贊)에 따르면 형주독인 [[관우]](關羽)에게는 [[미방]](糜芳)과 [[사인 (후한)|사인]](士仁)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219년 [[여몽]](呂蒙)의 계략에 의해 형주를 수비하고 있던 미방과 사인이 배반, 관우도 살해되어 형주는 손권에 의해 점령되었다. 강표전에 따르면, 형주에 있던 유비의 부장과 관리들 대부분은 손권에게 귀순했지만, 반준 혼자만 자택에 칩거해 출두하지 않았다. 손권은 부하에게 명하여 반준의 설득했지만, 반준은 침대 위에서 울면서 출두를 거부했다. 이에 손권은 반준을 침대에 묶어 자기 앞으로 연행시켜, 스스로 그를 설득해 감복시켰다. 반준은 보군중랑장, 형주의 군사로 위임되었고 (강표전에 따르면 치중도 겸임) 곧 분위장군으로 승진해, 상천정후로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