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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화는 목숨을 건진 것을 기뻐하여 개훈에게 감사를 표하였으나, 개훈은 그를 만나주지 않고 전처럼 원한을 품으며 살았다.
[[광화 (후한)|광화]](光和) 7년([[184년]]), 황건적(黃巾賊)이 봉기하였다. 이에 전 무위태수인 주천(酒泉)<ref name=yj/> 사람 황준(黃雋)을 불러들였으나, 기일을 맞추지 못하였다. 이에 양곡은 황준을 상주하여 주살하려 하였는데, 개훈이 나서서 황준을 구해 주었다. 황준은 황금 스무 근을 개훈에게 주며 감사를 표했으나, 개훈은
{{인용문2|나는 당신의 죄가 팔의(八義 ; 8개조의 면책 사유)에 해당하기 때문에 구해 준 것이오. 어찌 내가 대가를 받겠소!}}
라고 말하며 받지 않았다.<ref name=shs/>
같은 해, 북지(北地)<ref name=yj/>의 [[강족|강]](羌)이 [[변장 (후한)|변장]](邊章) 등과 함께 농우(隴右)를 침략하였다. 이때 자사 좌창(左昌)이 군세 동원을 틈타 수천만 전을 착복하였는데, 개훈이 간언하였다. 좌창은 노하여 개훈을 별동대로서 아양(阿陽)<ref>천수군(天水郡)의 속현.</ref>에 주둔시켜 적의 예봉을 막도록 하였다. 본디 좌창은 군사에 관한 일로 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는 것이었으나, 개훈은 여러 차례 전공을 올렸다.
변장 등이 그대로 금성(金城)<ref name=yj/>을 공격하여 군수(郡守)<ref>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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