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리코"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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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반달족]] 출신의 아버지와 로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전한다. 그의 아버지는 로마 군대에 복무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ref>스틸리코에 대한 기록이 부족한 이유는 그가 로마의 반역자로 몰려 처형당했고, 죽은 뒤 그에 관련된 문헌, 법률, 건축물, 조각품 등의 모든 기록을 말소하는 이른바 기록말살형(라틴어: Damnatio Memoriae)에 처해졌기 때문이다.</ref> 그는 게르만 족들처럼 아리우스파를[[아리우스파]]를 신봉했다.
 
=== 테오도시우스의 측근 ===
 
스틸리코의 죽음은 서로마 제국의 큰 손실이었다. 스틸리코 사후 로마군에 복무하고 있던 야만족 용병들이 로마군 손에 학살당했고, 대다수는 서로마 제국을 버리고 알라리크에게 가담했다. 그리고 스틸리코가 처형되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서고트족은 로마의 성벽을 빈번히 포위해왔다. 이러한 위기 앞에 호노리우스는 어떤 대책도 내놓지 못한 채 로마로부터 멀어진 라벤나에 틀어박혀 로마를 떠나줄 것을 요청할 뿐이었다. 그러한 그의 소극적인 태도는 서고트족이 이탈리아 국내를 유린할 틈을 허용했고, 410년의 로마 약탈을 불러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 또 다른 평가 ==
 
스틸리코에 대한 통설은 다 쓰러져가던 로마 제국을 야만족의 침략으로부터 지켜낸 충성스러운 재상이자 장수였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불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다 쓰러져가던 로마 제국을 지탱하려고 했던 스틸리코의 행동에 대해 로마의 사령관으로서의 책무, 내지는 죽은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대한 충성심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명과는 달리, 아직 동서로 완전히 분열되지 않은 틈에 스틸리코 자신의 아들을 차기 황제로 내세우려는 개인적인 야심 때문이었다는 설도 있다. 딸을 호노리우스에게 시집보낸 것도 그 포석이었을 거라는 설명이다. 알라리크를 마케도니아에서 패배시킨 일도, 스틸리코가 사실은 알라리크가 영토로 차지하고 있던 다르마티아의 속주를 자신의 지배하에 두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지적이 있다. 로마가 하드리아노폴리스의 전투(378) 이후 고트족에게 잃은 다르마티아는 매우 풍요로운 토지로 당시 재정난으로 고민하던 스틸리코에게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만약 이 두 가설이 사실이라면, 같은 입장에 있던 스틸리코와 루피누스의 대립관계도 이해하기 쉬워진다. 호노리우스의 시아버지이기도 했던 스틸리코가 더 이상 황제의 지위에 가까워지지 못하도록, 또 비옥한 다르마티아를 스틸리코가 차지하지 못하도록 동로마의 르피누스는 그의 병력을 없애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동ㆍ서 로마의 황제에게 있어 야만족의 수장 알라리크가 로마와 동맹을 맺었다는 사실은 반(半)야만족 인사였던 스틸리코를 대신할 인물이 나타났음을 의미했다. 또한 지위나 혈연도 황제에게 가까웠을 뿐 아니라 스스로 황제와 대적할 힘도 기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스틸리코가 동ㆍ서 로마의 경계심을 살 만한 경솔한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 설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