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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에서부터 몰려온 [[훈족]]의 서방 진출은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촉발시켰다. 가장 먼저 압력을 받은 것은 앞서 설명한 서고트족으로, 족장 알라리크가 정식으로 서고트족의 왕으로 취임하여(알라리크 1세) 로마군과의 동맹을 파기하고 제국의 영토를 침범, [[트라키아]](라틴어: Thracia, 지금의 [[발칸 반도]] 남동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에 스틸리코는 동로마와의 공동방위노선을 택해, 메디오라눔(라틴어: Mediolanum, 지금의 [[밀라노]])을 포위한 서고트족 군대를 격퇴한다. 그러나 아르카디우스의 측근으로 친위대 장관이었던 루피누스의 방해로 알라리크를 더 추격하지 못하고 서로마로 귀환해야 했다.<ref>동시대의 시인 클라우디아누스에 의하면, 그리스 북동부의 항구도시 테살로니키에서, 동방 병력을 콘스탄티노플로 돌려보내고 서방 병력은 서쪽으로 귀환하라는 아르카디우스의 명령서를 받고 스틸리코는 "비겁한 그 바보(루피누스)의 짓이야!"라는 분노를 토했다고 한다. 루피누스는 스틸리코의 휘하에 있던 동로마군 소속 군단을 철수시킴으로서 방해에 성공했지만, [[콘스탄티노플]] 부근에서 자기가 이끌던 군사에게 살해당해 버린다. 루피누스 피살에 스틸리코가 관여했을 지도 모른다는 주장도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콘스탄티노플로 귀환하는 동방 병력을 이끈 인물은 스틸리코의 휘하 장군이었던 고트족 출신의 장군 가이나스였다.</ref>
 
397년에는 알라리크를 다시 한번 [[마케도니아]]에서 패배시켰지만, 알라리크가 주변의 산악 지대로 숨어드는 바람에 그를 붙잡는 데는 실패했다. 그리고 같은 해에 아프리카에서 발발한 길도의 반란을 진압하고,<ref>스틸리코는 원로원에 가서 길도를 '공공의 적'으로 결의해 달라고 요구하며, "우리 식량이 일개 무어인의 마음 하나에 달려 있습니다. 게다가 그 인물은 공급자가 아니라 협박자로 행동하게 되었습니다."라며 군대 파병을 원로원에 요청하고서야 군사행동을 개시했다.</ref> 이어 라에티아에서 반달족에 대한 전쟁을 전개, 401년, 403년에는 다시 세력을 키운 알라리크와 대치하며 많은 공을 세웠다.
 
=== 죽음 그리고 그 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