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시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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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2=로마의 동맹시 및 부족 연합군(이탈리아)
|지휘관1=[[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br />[[가이우스 마리우스]]<br />[[폼페이우스 스트라보]]<br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br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지휘관2=퀸투스 포피디누스 실로네스<br />갈루스가이우스 피피누스 무티누스<br />에리우스 아시니우스<br />푸블리우스 베티누스 소가토누스<br />푸블리우스 프리신티우스<br />갈루스가이우스 비다키누스<br />마리우스 인가지누스<br />티투스 아프아니우스<br />티투스 아르인니우스<br />갈루스가이우스 폰티디우스<br />리키니우스 아프아니우스<br />마르쿠스 람포니우스
|병력1=5만 명
|병력2=5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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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의 진행과 결과 ==
 
[[기원전 90년]] 로마는 집정관 루푸스가 북부 전선을 맡고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카이사르]]가 남부 전선을 맡기로 했다. 신생 이탈리아는 모든 면에서 로마와 같은 군사 편제와 전술을 구사하여 로마를 괴롭혔다. 사실 로마가 치른 거의 모든 전쟁에 이들 동맹시도 참전했으니 모든 면에서 로마와 같은 전쟁을 치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전쟁 초반 로마는 집정관 루푸스가 전사할 만큼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차츰 남부 전선에서의 술라의 활약등에 힘입어 전쟁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기원전 90년]] 말 휴전기에 집정관 루키우스 카이사르는 로마 시민권의 전면적 확대를 정한 법을 제출하고 민회는 이를 가결함으로써 동맹시 전쟁은 사그라지게 되었다.
 
이듬해와 그 다음해까지도 남부 전선에는 전투가 계속되었으나 로마 시민권의 확대로 명분을 잃게 된 반란군은 로마의 편으로 돌아섰다. 이로써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 전체의 동맹부족과 도시들에게 로마와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고 진정한 반도 통일을 이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