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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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 =
|작성일자 = 2003년3월 19일
|확인일자 = }} </ref> [[한국의 군정기]]에는 [[조선공산당]]의 산하인 조선청년전위대 대장으로 있었으나 부친([[김좌진]])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된 후 이를 탈퇴하고 [[우익]]으로 전향하여 [[반탁운동]] 등 좌우대립에서 대립했다. 그러나 그의 극단적인 활동으로 [[미군정]]에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ref name="공보부"/> [[제1공화국]] 당시 [[1949년]] [[노덕술]] 등 친일파들에 의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및 정부요인 암살 음모 사건|암살표적]]이 되기도 했으며<ref name="공보부"/> , [[6월 17일]]에는 [[국가보안법]] 등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ref name="국가보안법"/>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대한 학도의용군 등 전선에 참전했으며 [[노동|노동운동]]에도 투신하여 노동운동가로서도 활동했다. [[대한민국 제3대 국회]] · [[대한민국 제6대 국회]] 등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의 [[독재]]에 비판하였다.<ref name="백만불미스터리"/> [[대한민국 제6대 국회|대한민국 제6대 국회의원]]에 당선 직후 [[한국독립당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고, 한국 비료 주식회사([[삼성]])가 [[사카린]]을 밀수하다 발각된 [[사카린 밀수사건|사카린 밀수사건]]으로 [[대한민국 국회|국회]]에서 [[삼성]] [[이병철]]과 [[제3공화국|정부]]를 비판하며 발언 도중 장관, [[국무위원]]들에게 [[국회오물투척사건|오물]]을 투척하였다.
 
[[대한민국 제7대 총선]] [[경기도]] [[수원]] [[신민당]] 후보로 선거 유세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깃불 관련 발언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찬양했다는 혐의로 [[반공법]]으로 옥고를 치렀고. 이후에는 [[10월 유신|유신]] 벽보를 뜯는 등 비판하다 [[1972년]] [[11월 19일]] 사람을 만나러 나간다며 나간 뒤 어딘가에서 쓰러져 [[혼수상태|의식불명]] 상태로 가망 없는 퇴원 직후 [[11월 21일]] [[서울 성북구]] 정릉동 무허가 자택에서 오전 9시 5분에 사망했다.<ref>길거리에서 쓰러졌는지 다른 곳에서 쓰러져 서울 센추럴 호텔에 옮겨졌는지 서울 센추럴 호텔에서 쓰러졌는지 병원으로 누군가에 의해 옮겨졌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ref><ref name="백만불미스터리">{{뉴스 인용|url=http://wizard2.sbs.co.kr/vobos/wizard2/resource/template/contents/06_review_image_detail.jsp?vProgId=1000292&vVodId=V0000247952&vMenuId=1004681&rpage=6&cpage=14&vVodCnt1=00015&vVodCnt2=00 |제목= 백만불 미스터리 |발행일자= 2003년 9월 1일 |출판사= [[SBS]] |확인일자= }}</ref> 대변에도 능하여 연설 등에서 지지를 받기도 했다.<ref name="백만불미스터리"/> [[본관]]은 [[안동김씨|안동]], [[김상용 (1561년)|김상용]](金尙容)의 12대손이며 [[호 (이름)|호]]는 [[의송]](義松), [[별칭]]으로는 잇폰({{llang|ja|いっぽ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