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 헤이스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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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 (1864년)|겐지]] 원년([[1864년]]) 11월, 신센구미가 에도에서 대규모 대원 모집을 하였는데, 헤이스케는 미리 에도로 내려가서, 9월 초순에 이토 가시타로에게 입대를 권유하여 이토를 대원으로 맞이하였다. [[게이오]] 원년([[1865년]]) 2월, 북진일도류 동문이자 시위관 시절부터 동료였던 [[산난 게이스케]]가 신센구미로부터 탈주하였다가 붙잡혀 할복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일이 연관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게이오 3년([[1867년]]) 3월, 헤이스케는 이토 가시타로와 함께 신센구미를 이탈하여 고료에지를 결성한다. 다만, 헤이스케는 고료에지에 참가하면서 이름을 '''난부 야시치로'''({{lang|ja|南部弥七郎}}, 또는 '''야하치로'''({{lang|ja|弥八郎}})라고도 함)로 바꾸고, 대외 유세 등에도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게이오 3년 11월 18일, [[아부라노코지아부라코지 사건]] 때 고료에지 대원들을 습격한 신센구미에 의해 살해되었다. 당시 나가쿠라 신파치의 증언에 의하면, 콘도 이사미가 "도도만은 살려두고 싶다"고 말하였기 때문에, 나가쿠라가 헤이스케가 빠져나갈 길목을 열어두었으나, 그 사정을 알지 못한 대원 [[미우라 쓰네사부로]]가 헤이스케를 베었다고 한다. [[시모자와 간]]의 『신센구미 시말기({{lang|ja|新選組始末記}})』에서는, 헤이스케가 나가쿠라의 뜻을 알면서도, '사키가케 선생'으로서의 자존심과 고료에지 동료들을 버려두고 갈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끝까지 신센구미 대원들과 맞서 싸우다가 결국 살해되었다고 적고 있다. 사건 후의 검시 결과에 따르면 이마에서 코까지 길이 21cm, 깊이 6cm의 상처를 입었고, 거의 즉사한 상태였다고 한다. 헤이스케의 시신은 그보다 앞서 살해된 이토 가시타로의 시신과 함께 덫으로 이용되어, 고료에지의 남은 동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이틀 정도 방치되었다. 헤이스케는 이후 같은 날 죽은 고료에지 동료인 이토 가시타로, [[모나이 겐모쓰]], [[핫토리 다케오]]와 함께 [[게이코 사]]({{lang|ja|戒光寺}}) 경내에 매장되었다. 묘비에는 그의 향년이 24세로 되어 있다.
 
[[분류:1844년 태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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