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하지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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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큐]] 3년(1863년) 3월 10일, [[세리자와 가모]]·[[콘도 이사미]]등 13명이 [[신선조]]의 전신, [[미부낭인조]](壬生浪士, 세이츄낭인조(精忠浪士)라고도 불린다)를 결성. [[일본의 번|번]]주(藩主) [[마츠다이라 카타모리]]가 [[교토 수호직]]을 맡고 있던 [[아이즈 번]]에 소속된다. 같은 날, 사이토를 포함한 11명이 입대했다. 시위관 이래, 콘도의 동지들은 콘도와 함께 상경했다는 설도 있지만, 적어도 사이토의 상경은 콘도와는 별도 행동이었다. 더욱이 콘도와 함께 상경한 사람들도, 통일된 행동을 취하고 있던 것은 아니다.
 
그 후, 신선조 간부를 선출할 때, 사이토는 20세의 나이에 부장 보조로 발탁되었다. 일반적으로 신선조 간부 중 제일 어리다고 여겨지고 있는 것은 [[오키타 소지]]이지만, 최연소는 사이토이다. (오키타의 생년월일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후에 조직 재편성 때에는 조장을 맡았으며, 검술대련 사범 등을 역임했다. 부대 내에서는 암살 임무를 많이 맡았으며, [[조슈번조슈 번]]의 스파이였던 [[오쿠라 이세타케]], [[아라키다 사마노스케]] 외에 [[타케다 칸류사이]], [[타니 산쥬로]] 등의 암살에 관여하였다고 한다.
 
[[게이오]] 원년(1864년) 6월 [[이케다야 사건]] 때는 히지카타 부대에 소속하였으며, 사건 뒤 막부와 [[아이즈 번]]에서 금 10량, 추가로 금 7냥을 포상금으로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