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 이븐 만수르 이븐 바이카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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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지 =
|배우자 =
|자녀 =[[바디 알 자민자만 (티무르 왕조)|바디 알 자만]]<br/>무자파르<br/>이브라힘 후세인
|부친 =만수르
|모친 =
|전임자 =[[아부 사이드 (티무르 왕조)|아부 사이드]]
|후임자 =[[바디 알 자민자만 (티무르 왕조)|바디 알 자만]]
|왕조 =[[티무르 왕조]]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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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후세인의 제국은 안전해졌다. 백양조도 더 이상 그에게 적대적 태도를 취하지 않았고, 사마르칸드의 티무르 제국도 내분으로 너무 약해져 그의 영역으로 확장할 엄두도 내지 못 했다. 백양조와 그의 영토 사이의 국경은 카스피해의 남쪽 끝에서 시작해 [[루트 사막]] 북쪽을 거쳐 [[하문 호]]에서 끝이났다. 사마르칸드의 정부와의 국경은 [[아무다리야 강]]이었다. 그는 양쪽 국경 모두를 존중하는 편이었다. 트란스옥시아나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그는 북방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아마 트란스옥시아나를 위협하는 우즈베크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굳이 그 위험한 부족과 국경을 접할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후세인은 여러 반란들을 진압해야 했다. 1490년에는 후세인의 아들 이브라힘 후세인의 근위대의 형제인 다르비쉬 알리가 당시 히사르를 다스리던 술탄 마흐무드와 공모해 그에게 반항했다. 마흐무드는 이브라힘이 거주하던 [[발흐]]로 진군했고, 후세인은 그를 격퇴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했다. 몇 년 후 후세인은 그의 장자 [[바디 알 자만 (티무르 왕조)|바디 알 자만]]에게 [[아스타라바드]]에서 발흐로 이동할 것을 명령했는데, 바디는 이에 반란을 일으켰다. 그 뒤에는 바디 알 자만의 아들 무함마드 무민 역시 아스타라바드의 통치를 거부했다. 후세인은 두 사람의 반란을 진압했으나 손자 무함마드는 처형당했고 바디는 용서받았다. 하지만 바디는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1499년, 바디는 헤라트를 포위했다.
 
1501년 우즈베크족이 트란스옥시아나를 [[바부르]]에게서 빼앗았다. [[무함마드 샤이바니]] 휘하의 우즈베크인들은 이제 호라산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노쇠한 후세인은 바부르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우즈베크족은 호라산을 마음껏 약탈했다. 이제서야 후세인은 마음을 고쳐먹고 출정을 결심했으나, 행동으로 옮기기 직전에 죽었다 (1506년). 그의 제국의 계승을 두고 그의 아들 바디와 무자파르 후세인은 싸우기 시작했다. 당시 후세인의 도움으로 원정을 시작했던 바부르는 두 형제의 싸움에 호라산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퇴각했다. 그 이듬 해, 후세인의 후계자들은 도망쳤고 무함마드 샤이바니는 헤라트에 입성했다. 호라산에 대한 티무르 가문의 지배는 이렇게 끝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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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후임
|전임자=[[아부 사이드 (티무르 왕조)|아부 사이드]]<br>[[야드가르 무함마드]]
|후임자=[[야드가르 무함마드]]<br>[[바디 알 자만 (티무르 왕조)|바디 알 자만]]
|직책=[[티무르 왕조]], [[헤라트]]의 지배자
|임기=[[1469년]] - [[1470년]]<br>[[1470년]] - [[150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