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 알자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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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0년대 내내 바디와 그의 아버지는 싸웠다. 당시 바디는 [[아스타라바드]]를 통치하고 있었는데, 이런 갈등 때문에 후세인은 바디에게 [[발흐]]로 이동할 것을 명령했다. 아스타라바드는 바디의 아들 무함마드 무민이 통치하게끔 했다. 하지만 바디는 이를 거부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마찬가지로 그의 아들 무함마드 무민 역시 할아버지의 명령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 부자의 반란은 곧 진압되었다. 두 사람은 헤라트에 감금되었는데, 후세인은 손자는 처형했으나 아들과는 화해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앙금은 사라지지 않았고, [[1499년]] 바디가 헤라트를 포위함으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1506년 후세인이 죽자 바디가 그의 뒤를 이었다. 하지만 그의 형제 무자파르 후세인이 반발했고, 곧 내전에 들어갔다. 이러한 와중에 [[우즈베크족]]의 [[무함마드 샤이바니]]가 그들의 영토를 위협하고 있었다. 이전에 후세인의 후원으로 [[카불]]을 정복한바 있던 [[바부르]]는 이때쯤 헤라트를 방문했는데, 형제의 싸움을 보고서는 우즈베크족과 싸우기를 포기하고 카불로 돌아갔다. 그 이듬해, 우즈베크족은 헤라트를 정복함으로서 이란에 대한 티무르 왕조의 지배를 끝냈다. (<ref>이후의 티무르 왕조는 [[무굴 제국]]을 참고하라.)</ref> 형제는 도망쳤다. 무자파르는 곧 죽었으나, 바디는 [[사파비 왕조]]의 [[이스마일 1세]]의 궁정에 망명했다. [[1510년]]에 이스마일이 우즈베크족을 원정한 것은 바디가 이스마일을 설득했기 때문이다. 이후 바디는 [[이스탄불]]로 떠났다. [[1517년]], 그는 그곳에서 전염병 때문에 죽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