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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년]] 익주자사 [[왕준 (서진)|왕준]](王濬)이 오나라를 치자 하고, 두예도 글을 올려 [[사마염]]의 결단을 촉구하였다. [[280년]] 마침내 [[사마염]]이 대군을 일으켜 오나라를 치게 했는데, 두예는 강릉(江陵)을 공격하게 되었다. 두예가 강릉을 함락시키고 오나라의 강릉독(江陵督) [[오연]](伍延)을 죽였다. 이후 형주 남부 지역으로 내려가면서 오군과 싸워 승승장구하니, 아직 함락되지 않았던 오나라 군현들이 항복해 왔다.
 
형주를 평정한 후 어떤 사람이 <봄이 오면 강물이 불어나 오래 머물기 어려우니 겨울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공격하자>고 하였다. 두예는 당시의 상황이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아 몇 마디만 쪼개면 전부 쪼개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하고 [[난징|건업]](建業)을 향해 진격하게 했다. 여기서 유명한 사자성어 '''[[파죽지세]]'''(破竹之勢)가 생겨났다. 또 익주에서부터 오군을 격파하고 서릉(西陵)에 도착한 [[왕준 (서진)|왕준]]에게 편지를 보내 건업을 점령하라고 하였다.
 
정벌군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진나라 조정에서는 [[가충]](賈充) 등이 오나라 정벌이 성공하기 어려우니 군사를 물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을 안 두예 역시 정벌을 계속해야 한다는 글을 올리면서 뜻을 꺾지 않았다. 마침내 [[왕준 (서진)|왕준]]이 건업을 점령하고 [[손호]](孫皓)를 붙잡아 [[뤄양|낙양]]으로 보내니 오나라는 멸망하고 진나라가 전 중국을 차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