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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삼국지》에서의 손부인에 관한 기술은 매우 적다. 《삼국지》촉서 법정전에는 「주공께서 공안에 계실때 북쪽으로 조조의 강성함을 두려워 하시고, 동쪽으로 손권이 핍박함을 꺼렸으며, 가까이에 손부인이 이 곁에서 변고를 일으킬까 겁내시었으니, 이하 생략.」라고의 제갈량의[[제갈량]](諸葛亮)의 말이 기록되고 있다. 손부인의 시녀 백명이 모두 무장해 있어, 유비는 손부인의 침소에 들어올 때마다 항상 두려워하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신혼 첫날밤의 날, 무장한 시녀들을 본 유비는 침실에서 도망쳤다고 하는 설도 있다).
 
《삼국지》촉서 목황후전에 의하면, 유비가 익주를 평정 한 후에, 손부인은 오에 귀국했다.《삼국지》촉서 목황후전에 주석이 달려있는 《한진춘추》에 의하면, 손부인은 유선을 데리고 오에 돌아가려고 했지만, 제갈량은 [[조운 (촉한)|조운]](趙雲)에 명해 장강을[[장 강]]을 봉쇄해, 유선을 구출했다. 이 때문에, 유비와 손부인의 사이는 더욱 더 험악하게 되어, 손부인은 공안에 새로운 거성을 쌓게 해 거주하게해, 별거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오 (삼국)|오]]에 귀국 후의 손부인의 행방은 불명하다.
 
== 《삼국지연의》에서의 손부인 ==
《[[삼국지연의]]》에서 손부인은 '''손인'''(孫仁)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무예가 출중하여 오라비인 손권마저도 두려워하는 여인으로 나온다. 그리고 항상 허리에 활을 장비하고 있던 것으로부터 「궁요희」라고 불리고 있다. 동오로 친히 온 유비를 시험하기도 하며 손권에게서 도망쳐올 때 손인과 유비 부처를 추격해오는 [[정봉 (형)|정봉]](丁奉)과 [[서성 (동오)|서성]](徐盛)을 물리쳤다. 손권이 손인을 다시 불러오기 위해 손인에게 모친이 위독하다는 허보를 보내 소환했고, 손인은 이때 어린 [[유선 (공사)|유선]](劉禪)을 데려가다 조운에게 빼앗기고 만다. 이 후, 익주로 들어간 유비를 따라 가길 원하는 손인을 손권이 놓아주지 않아 그대로 [[건업]](建業)에 머무르게 되나, 유비가 이릉전투 패전 당시에 사망했다는 오보로 인하여 [[장강]]에장 강에 투신자살하였다고 한다.
 
== 손부인의 친족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