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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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년]], [[한당]]이 병에 걸려 죽자 아버지의 작위 석성후(石城侯)를 세습하고 아버지의 병사를 거느렸다. 이해 7월, [[손권]](孫權)은 [[조비]](曹丕)가 죽은 틈을 타 강하(江夏)와 석양(石陽)을 공격하러 가면서 부친상을 당한 한종에게 무창(武昌)을 지키도록 했다. 그러나 한종은 근신하지 않고 음란한 행동을 벌였으며, [[손권]]이 죽은 [[한당]]을 생각하여 한종을 벌하지는 않았으나, 한종은 스스로의 잘못으로 인해 항상 불안해 했다. 결국 한종은 12월에 [[한당]]의 시체가 든 관을 수레에 싣고 가족들과 자신이 거느리던 병사들을 데리고 [[위 (삼국)|위나라]]에 가서 항복했다. 위나라에서는 그를 장군으로 임명하고 광양후(廣陽侯)에 봉했다. 이후 위나라 군사들을 이끌고 오나라의 변경지역에 쳐들어와 백성들을 살해하는 일이 잦았으므로 [[손권]]은 이를 갈며 한종을 증오했다.
 
[[252년]] 12월, [[위 (삼국)|위나라]]의 실권을 쥐고 있던 [[사마사]](司馬師)는 대군을 일으켜 [[오 (삼국)|오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호준]](胡遵)은 [[제갈탄]](諸葛誕)과 함께 동흥(東興)을 공격했는데, 한종은 [[호준]]의 부장으로 전부독(前部督)의 직책을 가지고 선봉을 맡았다. [[오 (삼국)|오나라]]의 태부(太傅) [[제갈각]](諸葛恪)은 [[정봉 (형)|정봉]](丁奉), [[당자]](唐咨) 등을 선봉으로 삼고 위군에 맞서게 했다. [[정봉 (형)|정봉]]은 군사 3000명을 거느리고 [[호준]]의 진영에 다가갔는데, 한겨울이었기 때문에 날씨가 추워서 [[호준]]은 술을 마시며 잔치를 즐기고 있었다. [[정봉 (형)|정봉]]이 병사들을 고무하며 위군을 일제히 공격하자, 한종은 오군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제갈각]]은 [[손권]]이 살아 있을 때 한종을 미워하던 것을 생각하여 한종의 머리를 베어 건업으로[[건업]](建業)으로 보내 [[손권]]의 묘에 바쳤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한종이 창으로 [[정봉 (형)|정봉]]을 찌르려다가 도리어 [[정봉 (형)|정봉]]의 단도에 찔려 죽는 것으로 나오며, [[한당]]의 아들이라는 말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