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각 (후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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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윤의 반란 ===
초평(初平) 3년([[192년]]) 4월, [[여포]](呂布) · [[왕윤]](王允) 등은 동탁을 암살하였고, 왕윤은 동탁의 부하의 대부분이 양주 출신임을 알고 군대 해산을 계획하는 한편 [[이숙 (후한)|이숙]](李肅)에게 섬현의 우보를 공격하게 하였다. 물론 이각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보는 반격하여 이숙군을 물리쳤지만, 부하 [[복호적아]](攴胡赤兒)의 배신으로 죽고 말았다. 이각은 왕윤에게 사면을 청원하였지만 거절당하였고, 장안에서는[[장안]](長安)에서는 영천 사람들을 모두 죽인다는 소문이 돌아 이각은 신변에 만전을 기하였다. 그러나 [[가후]](賈詡)의 진언을 받아들여 곽사와 함께 10만 명의 병사를 모아 장안을 기습하기로 하였다. 이와 동시에 자기 휘하의 병주(幷州) 출신 부하들을 모두 죽였다(이는 왕윤과 여포가 병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각의 기습 계획을 알아챈 왕윤은 동탁의 부하였던 [[호진]](胡軫) · [[서영 (후한)|서영]](徐榮) · [[양정 (후한)|양정]](陽定) 등에게 이각을 영격할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참패하여 서영은 이각에게 토벌당하였고, 호진과 양정은 왕윤의 방만한 태도와 꾸중에 불만을 품고 신풍(新豊)까지 진군하다가 이각에게 배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