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훈의 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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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훈의 반란'''은 [[중국]] [[당나라]] 말에 [[방훈]](龐勛)이 일으킨 반란이다.
==개요==
[[868년]] 7월 [[당나라]] 남부의 [[구이린]]의 서주와 사주를 지키던 당나라의 병사 800명은 6년 동안 교체가 이루어지 않았고, 1년을 더 주둔하라는 명령에 병사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도우후 [[허길]] 등의 주도로 반란을 일으켜, [[방훈]]을 우두머리로 추대했다. 방훈은 군대를 이끌고 구이린을 출발해 [[후난성]]을 지나 [[장강]]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와 [[화이난성]]에 이르렀다. 숙주를 공격해 함락시키고 [[868년]] 10월에 서주를 공격해 서주절도사 [[최언증]]을 포로로 잡고 화이난성, 조복, 연해 등지를 공격했으며, 그 과정에서
반란군은 지금의 [[산둥성]] 남부, [[장쑤성]], [[안후이성]] 북부 등을 지배하고, [[볜허강]]에 와서 당나라 황실을 위협했다. 당나라는 [[강승훈]]을 보내 [[번진병]], [[사타족|사타]], [[토욕혼]] 등 여러 민족 군대를 이끌고 방훈을 공격했다. 방훈의 반란군은 장군 [[장현임]]의 배신으로 숙주와 서주에서 잇달아 패배했고 [[869년]] 9월 방훈도 [[기현 전투]]에서 살해되면서 반란은 1년 만에 평정되었다.
[[분류:9세기 중국]]
[[분류:9세기 분쟁]]
[[분류:당나라]]
[[분류:반란]]
{{토막글|역사}}
[[ja:ホウ勛の乱]]
[[zh:庞勋之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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