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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년]] [[고구려]]에 침입하여 수도 [[환도성]]을 점령하였고 [[동천왕]](東川王)은 [[옥저]]로 도망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강한 저항을 받아 멸망시키지 못하고 군대를 물렀다. 고구려 초기에는 군주가 직접 군대를 지휘하여 전쟁에 참전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관구검은 고구려의 [[동천왕]]을 맞아 처음에는 고전했지만 결국 그를 물리쳤다. 이후 환도성을 공략하며 고구려의 전국토를 유린하지만 남옥저 부근에서 고구려 장수 유유와 밀우의 활약에 막히며 부장 왕기(현토태수)가 사살되는 등 피해를 입으며 위나라로 후퇴했다.
 
수서 열전에 신라국편에 "위"나라 장수 "관구검"이 고려를 정벌하고, 깨지자 "옥저"로 달아났다. 그 후에 다시 옛땅에 돌아왔는데 남아있는 자들이 "신라"가 되었다.(<魏>將< 丘儉>討<高麗>, 破之, 奔<沃沮>. 其後復歸故國, 留者遂爲<新羅>焉)라는 내용이 있다. 관구검의 출신은 불문명하나, 그가 데리고 있었던 부족은 [[갈족]], [[오환족]] 이라고 한다. 오서(吳書)에 따르면 동시대 제갈씨는 제나라 지역에 사는 갈족 성씨라고 한다. (5~6세기 신라 순수비에 [[갈문왕]]이란 출자가 있다.)
 
그 후, 진동도독으로 임명돼 양주에 와서, [[오 (삼국)|오]]의 [[제갈각]](諸葛恪)<ref> [[자 (이름)|자]]는 원손(元遜), [[오 (삼국)|오나라]]의 재상 [[제갈근]](諸葛瑾)의 장남. </ref>의 침공을 막았다. [[255년]] 관구검은 [[사마사]](司馬師)의 전횡에 분노, [[문흠]](文欽)과 함께 군사를 일으켰다. 그러나 [[문흠]]이 [[사마사]]에게 지면서, 관구검은 야반도주하여 탈출하는 길을 선택했고 자연히 군세가 와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