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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onscat|Baibars}}
'''바이바르스'''(al-Malik al-Zahir Rukn al-Din Baibars al-Bunduqdari(아랍어:الملك‭ ‬الظاهر‭ ‬ركن‭ ‬الدين‭ ‬بيبرس‭ ‬البندقداري), 또는 Baybars al-Bunduqdari(아랍어: ‬بيبرس‭ ‬البندقداري)‬بيبرس‭, [[1223년]] - [[1277년]] [[7월 1일]])는 [[이집트]]와 [[시리아]]를 지배한 [[맘루크 왕조|맘루크]] 왕조의 5대 [[술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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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위 이후==
[[1261년]] 훌라구에 의해 살해된 압바스 왕조 최후의 [[칼리파]] [[알 무스타심알무스타심]]의 숙부를 카이로에서 보호했다. 이 돌연한 행동은 카이로 주민에게 갑작스런 지배자가 되었던 바이바르스에게 정권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 구심력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쿠투즈를 살해하고 즉위한것 때문에 상당히 평판이 좋지 못하였다). 다만 바이바르스는 실권을 돌려주고 [[칼리파]]에게 의존하지 않았기에 [[칼리파]]는 명목상의 존재였다. (여담이지만 바이바르스는 열심한 이슬람교 수니파였다고 한다). 이후 바이바르스는 각지로 출병하였는데, 1277년 죽을때까지 30회 이상의 출병을 벌였다고 한다.
 
[[1268년]] 훌라구의 죽음으로 혼란에 빠진 틈을 노려 북상하여 몽골에게 협력했던 십자군 국가의 여러도시를 공략하여 완전히 파괴했다. [[5월 18일]] [[안티오키아]]를 포위해 약 4일만에 함락시켜 [[안티오키아 공국]]을 멸망시켰다. 그때 주민들 모두를 살해하고, 일부는 노예로 만들고 도시를 완전히 파괴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국가들을 자극시켜,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에드워드 1세]]가 이끄는 십자군 파병을 불러일으켰다. [[1271년]] 십자군이 침공해오자 그들과 싸우고 후에 에드워드 1세와 휴전을 맺었다. 일부 문헌에 따르면, 바이바르스는 에드워드 1세를 독살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고 전해진다. 결국 에드워드는 아버지 [[잉글랜드의 헨리 3세|헨리 3세]]의 죽음으로 인해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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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으로 크리스트교권에 있던 비잔티움 제국과 시칠리아와의 교역로을 여는등, 킵차크 한국과의 동맹에 의한 일 한국 협공등 정치적인 감각도 뛰어났다.
 
==더보기 같이 보기 ==
*[[살라딘]]
*[[맘루크]]
 
== 참고문헌 ==
일본쪽 참고문헌이다.
*佐藤次高『世界の歴史8 イスラーム世界の興隆』中央公論社、1997年 ISBN 4124034083
 
== 외부 연결 ==
{{commonscatcommons+cat|Baibars}}
 
{{십자군 중요 인물}}
 
[[분류:1223년 태어남]]
[[분류:1277년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