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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총명함으로 조부 [[조조]](曹操)에게 사랑을 받았으나 정작 아버지 [[조비]]에게는 총애를 받지 못하였다. 유년 시절에 모후 견희가 [[조비]]에게 사사당하는 일을 겪었고, [[조비]]는 더더욱 조예를 피하게 되었다. 어느 날, 두 부자가 우연히 사냥을 하였는데 조예가 새끼 밴 어미 사슴을 죽이지 않고 살려 [[조비]]를 감동시켰고, 이 일로 황태자로 낙점되었다고 한다. [[226년]], 부친 [[조비]]의 고명에 따라 [[조진]](曹眞), [[조휴]](曹休), [[사마의]](司馬懿), [[진군]](陳群) 등의 보좌를 받아 즉위하였다. 즉위 초에는 학문에 힘쓰며 직접 통치하지 않았으나, 곧 스스로 정치에 나섰다.
 
그는 우선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대한민국 한나라당 소속의 정치인들과는 상당히 다르게, 조부 조조와 아버지 조비와 같이 자신이 많은자신의 재산을 기부한다. 그백성들에게 덕분에베품으로써 앞서 조비 시기 때 처럼, 위나라는 삼국 시대 중 가장 번영한 나라로 거듭난다. 그리고 [[촉한]]이 [[오 (삼국)|오]]와 연합하여 위를 공격하는 상황에서 [[사마의]] 등의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친히 전투에 참가하는 등 위나라를 존망 위기에서 구해내어 명군의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말년에는 궁을 새로 짓고 사치로운 생활을 하는 등 민심에 어긋나는 행위를 많이 하였는데 [[235년]] 허도에 큰 공사를 일으켜 궁전을 짓고 [[낙양]]에도 조양전과 태극전을 짓고 총장관을 쌓았는데 그 높이가 10길에 달했고 숭화전과 청소각, 봉황루 등을 세우고 구룡지를 만들어 박사 [[마균]]에게 총감독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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