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악 (중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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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출신 배경 ===
주악의 출생연대 및 출신 배경에 관해서는 전혀 알려진 것이 없다. [[당나라]]의 공식 역사서인사서(史書)인 《[[구당서]]》와 《[[신당서]]》에서도 그의 사적에 관한 열전이 없었을 정도이다. 알려진 것은 그가 추계(陬溪. 현 [[후난 성]] [[창더 시]]) 출신으로 보아, 비[[한족]]계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같은 비한족계 출신인 [[뇌만]](雷滿)의 동업자(사냥꾼)였고, 뇌만과 함께 사냥을 나갔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그들이 함께 사냥을 나갔는데, 그들은 사냥한 고기의 분배를 놓고 서로 다투게 되었다. 이때 그는 뇌만을 죽이려고 했으나, 끝내 이루지 못했다.<ref name=ZZTJ254>《[[자치통감]]》, [[:zh:s:資治通鑑/卷254|권 254]]</ref>
 
=== 형주를 점거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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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후 ===
주악의 치세 동안, 그의 지배하에 있던 무안군 번진은 이렇다 할 혼란 없이 대체로 안정적인 편이었다. 그러나 소주자사(邵州刺史. 현 [[후난 성]] [[사오양 시]]) [[등처눌]](鄧處訥)은 주악이 민욱을 형편없이 죽였기 때문에 민욱의 죽음에 책임이 있었다고 주장하였고, 그의 부하 장병들에게 민욱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자신을 따를 것을 호소하였다. 급기야 [[893년]], 등처눌은 낭주자사(朗州刺史) 뇌만과 결탁하여 함께 담주를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담주성을 함락시키고 주악을 베어 죽였다. 이어서 등처눌은 무안군 유후(留後)를 자칭하였다.<ref name=ZZTJ259>《[[자치통감]]》, [[:zh:s:資治通鑑/卷259|권 259]]</ref>
 
== 출전 및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