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타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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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티아라를 건설했고, 그리하여 과거 페니키아 식민시와, 동쪽의 벵가지부터 서쪽의 [[지브롤터]]와 [[포르투갈]]에 이르는 지역([[사르데냐]], [[코르시카]], [[시칠리아]] 일부, [[발레아레스]] 제도 등)를 아우르는 제국을 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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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영기 ===
 
[[파일:CarthageMap.png|thumb|300px|기원전 3세기 카르타고의 영토.]]
[[기원전 5세기]] 초반 카르타고는 서지중해 일대의 교역 중심지로 변모한다. 카르타고는 [[하드루메툼]], [[우티카]], [[케르코우아네]] 등 옛 페니키아 식민지의 영토와 리비아의 해안지대를 정복, 현재의 [[모로코]]부터 [[이집트]]의 해안지대에 이르기까지 영토를 확장했으며, 지중해 내의 [[사르데냐]], [[몰타]], [[발레아레스 제도]], [[시칠리아]] 서편에까지 지배권을 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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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망 ===
[[기원전 149년]] 로마는 카르타고가 도저히 이행할 수 없는 조건으로 카르타고를 압박해왔다. 카르타고는 이 요구를 묵살하고 3차 포에니 전쟁에 돌입했고 로마는 카르타고에 대한 공성전을 벌였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아프리카누스]]가 이끄는 로마군은 3년에 걸친 공격으로 결국 카르타고 도시를 함락하고 주민을 완전히 축출했으며, 도시를 불태우고 소금을 뿌려 폐허로 만들었다. 하지만 로마는 살아남은 카르타고 시민들을 아프리카에서 살수 있도록 했다.
 
[[기원전 149년]] 로마는 카르타고가 도저히 이행할 수 없는 조건으로 카르타고를 압박해왔다. 카르타고는 이 요구를 묵살하고 3차 포에니 전쟁에 돌입했고 로마는 카르타고에 대한 공성전을 벌였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아프리카누스]]가 이끄는 로마군은 3년에 걸친 공격으로 결국 카르타고 도시를 함락하고 주민을 완전히 축출했으며 도시를 불태우고 소금을 뿌려 폐허로 만들었다. 하지만 로마는 살아남은 카르타고 시민들을 아프리카에서 살수 있도록 했다.
 
== 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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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
 
국가형태는 1년 임기인 2명의 행정장관, 종신의원으로 구성된 [[원로원]], 백인회(百人會:실제인원은 104명), 시민 총회로서의 [[민회]], 임기 무제한의 특별직, 장군 등을 가진 도시국가로서 실질적인 정치체제는 전형적인 [[과두제]]였다. 한편 [[용병]]제도를 채용한 점은 그리스·로마의 도시국가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