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 불교 사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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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 불교 사상은 신라 시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고려 시대의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 판각 사업, [[임진왜란]] 때의 승병의 활동, [[삼일 운동|3{{.cw}}1 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백용성]](白龍城){{.cw}}[[한용운]](韓龍雲)의 두 고승이 참여한 것 등은 모두 호국 불교 사상이 한국 불교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것을 보여준다.<ref name="글로벌-호국사상"/>
 
==성립사상의 과정성립==
 
[[신라]]에서는 [[6세기]]경부터 토착적인 [[화랑도]]의 전통과 외부로부터 새로이 도입된 종교인 [[불교]]의 교리, 그중에서도 특히 《[[인왕반야바라밀경]](仁王般若波羅密經)》에 근거한 진호국가(鎭護國家)의 교리가 융합되어, 신라의 불교는 불력(佛力)으로 국가를 지키고 국민 사상을 계발시키는 구심점을 이루게 되었다.<ref name="글로벌-신라 불교의 진호국가 사상">[[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동양사상/한국의 사상/삼국시대의 사상/삼국시대의 불교사상#신라 불교의 진호국가 사상|동양사상 > 한국의 사상 > 삼국시대의 사상 > 삼국시대의 불교사상 > 신라 불교의 진호국가 사상]],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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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무왕]] 때 [[신혜]]법사(信惠法師)가 중앙 관직에 임명되었고 [[명랑]]법사(明朗法師)의 건의에 따라 당병(唐兵) 방어책으로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지으니 삼국 통일의 상징처럼 되었다.
 
==사상의 계승==
[[신라]]에서 확립된 호국 불교 사상은 [[신라 시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고려 고종]](高宗) 23년(1236)에 착수한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 판각 사업은 외적을 퇴치하기 위하여 국가와 국민이 단합하여 완성한 호국불사(護國佛事)이다.<ref name="글로벌-호국사상"/> [[조선 시대]]의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일어선 [[서산대사|서산]](西山){{.cw}}[[사명대사|사명]](四溟)을 위시한 의승군(義僧軍)의 활약 역시 호국 불교 사상의 발로였다.<ref name="글로벌-호국사상"/> [[삼일 운동|3{{.cw}}1 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백용성]](白龍城){{.cw}}[[한용운]](韓龍雲)의 두 고승이 참여함으로써 한국 불교의 호국 불교 사상은 현대에까지 계승되어 왔다.<ref name="글로벌-호국사상"/>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