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불교 사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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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계학|원효|태현|의적}}
 
[[겸익]](謙益: ?-?) [[백제 성왕]] 4년([[526년]])에 백제에 들어와 [[백제 성왕|성왕]]의 환대를 받고 [[흥륜사]](興輪寺)에 있으면서 명승 28명을 소집하여 율부 72권을 번역하였다.<ref name="글로벌-겸익">[[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고대사회의 발전/삼국의 성립과 발전/고대문화의 발전#겸익|한국사 > 고대사회의 발전 > 삼국의 성립과 발전 > 고대문화의 발전 > 겸익]],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 당시에 [[중국]]에는 《[[오부율]](五部律)》을 포함한 몇 가지 율부가 이미 번역되어 있었는데, 이 번역은 [[인도]]에서 직접 가져온 [[산스크리트어]] 경전을 번역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f name="네이버용어사전-겸익">[http://terms.naver.com/item.nhn?dirId=3106&docId=4268 "겸익(謙益)"], 《네이버 용어사전》. 2011년 3월 7일에 확인.</ref> 겸익의[[겸익]]의 이러한 활동에 의해 예의와 의식에 치중하는 [[율종|계율 중심의중심]]의 [[백제 불교]]의 특징이 이루어졌다.<ref name="글로벌-겸익"/>
 
[[남북국 시대]] [[신라]]의 [[계학]](戒學)은 [[원효]](元曉: 617-686){{.cw}}[[태현]](太賢: 8세기 중엽){{.cw}}[[의적]](義寂) 등의 고승에 의해서 발전을 보았다.<ref name="글로벌-신라의 계학">[[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한국의 종교/한국의 불교/한국불교의 사상#신라의 계학|종교·철학 > 한국의 종교 > 한국의 불교 > 한국불교의 사상 > 신라의 계학]],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 이들은 각각 모두 [[대승]] [[계율]]인 《[[범망경]](梵網經)》을 중심으로 하여 저술된 《[[범망경보살계본사기]](梵網經菩薩戒本私記)》{{.c}}《[[범망경고적기]](梵網經古赤記)》{{.c}}《[[범망보살계본소]](梵網菩薩戒本疏)》를 남겼는데, 이것들로 볼 때 당시의 불교계는 대중들의 윤리생활에 관심이 컸던 것을 알 수 있다.<ref name="글로벌-신라의 계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