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동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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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의 이석구,현우현,황운,이걸소,[[김문갑]] 등은 각 지방을 왕래하면서 연락을 담당하였다. 중앙조직을 골간으로 지방조직을 만들기 위해 위와 같이 2명 내지 3명의 지방조직 책임자가 임명되었지만 여기에는 난관이 도사리고 있었다.
 
지방조직 중에는 사람만 지명한 경우도 있었고, 우형유형(有形)의 조직이라는 건국동맹 대신 [[농민동맹]],농민협회 등의 이름을 쓰는 이명동체(異名同體)이었다. 또한 무형(無形)의 그룹으로 조직된 경우도 있었다. 즉 지방조직의 경우에는 무형의 그룹을 중심으로 하고, 유형의 조직인 경우에도 건국동맹 대신 다른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조직의 종적 연계성 노출을 피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이유는 전일적 조직체계로 종적인 연결을 시킬 경우 [[일본제국|일제]]에 의한 대량 탄압의 소지가 컸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지방조직 책임자들은 일제시기 민족해방투쟁에 참가한 경력을 갖고 있으며, 이들이 활동한 대표적인 단체는 1920년대의 [[신간회]]와 [[조선노농총동맹]]이었다. 이러한 단체에서 활동하지 않은 인물들은 주로 1920년대의 노동,농민운동 단체에 관계하였다. [[공산주의]]운동에 관련한 인물들은 대부분 1920년대의 1,2차 [[조선공산당]]에 참가하였다. 광복 후 이들 대부분은 [[건국준비위원회]],[[인민위원회]]에 활동했다.
 
==참가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