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 (일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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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그림:Nanbokucho-capitals.svg|thumb|right|교토의 북조와 요시노의 남조]]
 
=== 남북조의 내전 ===
고다이고 천황은 수세에 몰리자 아시카가 다카우지와 화친을 맺은 뒤 삼종신기를 건네주었다. 그러나 요시노로 도착하자 곧 남조 정권을 수립한 뒤, 북조에 건네준 삼종신기는 위조품이라고 선언했다. 한편, 북조를 추대한 무로마치 막부에서는 내부 분열이 심화되었다. 이에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남조 공격을 뒤로 미룬 뒤 [[1351년]]에 일단 화약을 맺었다.<ref>이 때 북조가 잠시 해체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ref> 그러나 남조의 군대가 교토를 공격하면서 화약은 곧 깨지고 말았다. 막부의 군대가 다시 교토를 수복하자, 남조는 [[1353년]]에 다시 교토로 진격했다. 그 해 [[6월 13일]]에는 고코곤 천황이 소수의 신하와 함께 교토를 탈출하였으며, [[9월 21일]]에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호위를 받으며 교토로 귀경할 때까지 망명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1354년]] [[12월 24일]]에 남조의 반격으로 고코곤 천황은 다시 교토를 탈출해 각지를 떠돌아다녔다. [[1362년]]에 막부의 군대가 교토를 완전히 수복할 때까지 남조는 총 4회나 교토를 점거하였다. 한편, 북조는 성립 과정에서 막부의 추대를 받았으며, 군사적 경제적으로 막부의 지원 없이는 버티기 힘들다는 것이 명확해졌으므로, 남북조의 통일 이후에도 막부가 실권을 장악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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