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굉 (장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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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홍농태수(弘農太守)가 되었고, 이후 기주자사(冀州刺史)로 전임하였다. 왕굉은 성품이 각박하여 사적인 편지는 쓰지 않았고, 호족들을 멀리하였다. 때문에 빈객들은 '''"왕(王 ; 왕굉)은 혼자 앉는다"'''라고 말하였다.<ref name=a/>
 
훗날 동생 왕윤이 사도가 되었고, 왕윤은 왕굉을 우부풍태수(右扶風太守)로 전임시키는 한편 같은 군 사람 송익(宋翼) 좌풍익태수(左馮翊太守)에 임명하였다. 훗날 [[이각 (후한)|이각]](李傕) 등이 [[장안]](長安)에 입성하였을 때 왕윤을 죽이려 하였으나, 왕굉과 송익을 두려워하여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ref name=b>[[범엽]](范曄), 《후한서(後漢書)》</ref>
 
때문에 이각 등은 칙명으로 왕굉과 송익을 불러들였다. 왕굉은 송익에게 사자를 보내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