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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병'''(尹始炳, [[1860년]] ~ [[1931년]])은 [[일제 강점기]]에 초기 [[일진회]] 조직을 주도한 친일파 인물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충청병사를 지내다가 [[1898년]] [[만민공동회]]에 참여, 회장으로 선출되고 [[독립협회]]에도 가담했다. [[독립협회]] 해산 이후 각처를 방랑하면서 정국 추이를 지켜보던 중, [[러일 전쟁]]으로 일본군이 서울에 진주해 오자 일본군 통역으로 나섰다. 이 때 [[최석민]]을 통해 [[송병준]]을 만나 [[1904년]] [[일진회]]를 조직하였다. ''[[일진회]] 참조.'' 그는 일진회 회장을 맡았고, 동생인 [[윤길병]]은 평의원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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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병은 [[러일 전쟁]] 과정에서 일본군의 북진을 돕기 위해 [[일진회]] 회원을 동원, 군수물사 수송과 정보 활동을 벌여 일본군을 크게 도았다. 이 일로 일본으로부터 일훈욱일사등장(日勳旭日四等章)을 받았다. [[을사 조약]] 체결을 촉구하는 선언서 작성에 참여한 그는 또 다른 친일단체인 [[조선노동협회]]를 조직하였다<ref>김삼웅, 《친일정치100년사》(동풍, 1995년) 56쪽.</ref>.
 
자신이 회장까지 지낸 일진회를 버리고 조선노동협회를 결성하게 된 까닭은 송병준과의 불화에 있었다. [[을사조약]] 체결 이후 일제의 후원을 얻은 일진회 회원들은 송병준이 농상공부대신으로 입각하는 등 일제히 관직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일진회의 대표격으로 등용된 송병준과 관직을관직 배분을 놓고 사이가 벌어진 회장 윤시병은 회장 자리를 [[이용구]]에게 넘겨주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광복회]]와 공동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에 선정되었다. 이 명단에는 그의 동생 윤길병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