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 시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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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육조 시대'''(六朝時代: 229-589)는 중국 [[삼국 시대 (중국)|삼국시대]]의 [[오 (삼국)|오]](吳: 229-280)·{{.cw}}[[동진]](東晉: 317-420) 및 [[남북조 시대|남조]](南朝)의 [[송 (남조)|송]](宋: 420-479)·{{.cw}}[[제 (남조)|제]](齊: 479-502)·{{.cw}}[[양 (남조)|양]](梁: 502-557)·{{.cw}}[[진 (남조)|진]](陳: 557-589)을 합한 시대이다.
 
모두 [[건강 (지명)|난징]](南京)을 수도로 하였다. (당시에는 건업(建業), 건강(建康)이라고 불리었다.) 양쯔강(揚子江) 하류의 양저우(揚州)를 정치·{{.cw}}경제의 중심지로 삼았으며, 중류의 징저우[荊州)를 군사상의 요지로 삼아 화북(華北)의 정권과 대항하였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위진남북조 시대]](위진 시대: 220-420, 남북조 시대: 420-589)와 거의 같은 시간·{{.cw}}공간을 포함하는데, 원래 귀족문화(궁중문학·{{.cw}}書道·{{.cw}}繪畵 등)가 왕조를 달리하면서도 통일성을 지녔기 때문에 문화사적 시대 구분에 쓰인다.
 
[[한나라]] 시절에는 강남 일대에는 한나라의 형식적인 통치권 자체는 미쳤으나 미개발지역이 많았고 이민족들이 할거하여 강남 지역의 발전이 더디었다. 그러나 육조 시대를 거치면서 산월족 등 강남 일대의 이민족이 한족에 의해 토벌되고 개발이 본격화됨으로써 중국 경제에서 중요한 지위를 점차 차지해나가게 되었다. 이후 강남이 화북의 경제력을 압도하게 되고 중국 경제의 중심부로 기능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