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위 (오호 십육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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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화북 각지에서 후연의 군대와 전쟁을 벌이던 정령족은 [[385년]]에 적진이 죽고 뒤를 이은 [[적성]](翟成)도 무너지면서 화북 일대에서 세력이 급속도로 쇠퇴하였다. 한편 적진의 사촌형 [[적요]](翟遼)는 적진이 죽자 일부 부락을 이끌고 남하, 황하를 건너 여양(黎陽)의 [[동진]](東晉) 세력에 항복하였다. 그리고 [[386년]]에 반란을 일으켜 여양을 점거하고 산동성 서부 일대에 세력을 구축하였다. [[387년]]에 후연이 공격해오자 적요는 후연에 복속되었다.
 
적요는 노(魯) 지역에서 할거 하다가, 10월에 후연을 배반하고 자립하여, 388년 2월에 위(魏)나라을나라를 세우는데, 적위(翟魏)이다. 적요는 천왕을 자처하며 후연, 동진을 노략질하였다. 적요에 이어 적교(翟釗)가 뒤를 이었다.
 
392년의 새해가 밝자 모용수는 노략질을 일삼는 적위을 공력하였다. 적교는 이에 대응하여 관도를 선제공격하며 역공세을 편다. 모용수가 여양에서 도하할 준비를 하자 적교가 도하를 저지하기 위해 병력을 배치한다. 모용수는 서쪽으로 40리 떨어진 서진으로 군영을 옮기고 함선 100여 척을 만들어 도하하려는 속임 전법을 구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