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열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Luckas-bot (토론 | 기여)
잔글 r2.7.1) (로봇이 더함: es, ka, nl, pt
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File:Decena trágica.JPG|섬네일|270px|오른쪽|반란군의 전투 장면]]'''비극의 열흘'''([[에스파냐어]]: La Decena Tragica)은 1913년 2월 9일~2월19일, [[멕시코 혁명]]의 과정에서 일어난 [[프란시스코 I. 마데로]]군과 [[펠릭스 디아즈]]의디아스의 반란군 사이에서 일어난 전투이다. 이 과정에서 [[빅토리아노 우에르타]]는 마데로의 연방군 총사령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란군에 동참해 이후 권력을 잡게 되었다.
 
==배경==
멕시코 혁명의 성공으로 프란시스코 마데로가 [[포르피리오 디아스]]를 망명시키고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마데로의 출신 성분은 [[크리오요]]이자 대농장주(hacendados)의 아들로서 멕시코 혁명의 본 목적인 개혁이 지체되었고 재정은 악화일로를 걸어 혁명군 사이에 불만이 고조되었다.
줄 10 ⟶ 11:
 
그러던 중, [[펠릭스 디아스]]의 반란이 일어났다. 펠릭스 디아스는 마데로의 혁명군에 의해 실각당한 포르피리오 디아스의 조카로서 그가 일으킨 반란은 곧 진압되었고 그는 [[멕시코시티]]의 감옥에 수감되었다.
 
==비극==
===비극의 시작===
줄 23 ⟶ 25:
 
마데로는 4.5km가량 떨어져 있는 [[차풀테펙]]의 관저에서 급히 멕시코시티로 돌아왔다. 그는 근처 사진관에서 [[전화기]]로 소식을 듣고는 빅토리아노 우에르타 장군에게 연방군의 [[수도 방위 사령관]] 지위를 맡겼다. 그러나 빅토리아노 우에르타는 이미 반란군에 참여한 상태였다. 그러한 의혹은 이미 여러 번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데로는 그것을 믿지 않고 우에르타를 신임해 긴급 상황에 그에게 사령관을 맡긴 것이다. 당시까지의 최대 전공을 세운 비야르 장군은 부상을 당한 상태였기에 제외되었다.
 
===비극===
우에르타는 최대한 연방군의 피해를 늘리려는 작전을 구상했다. 우선 그는 마데로가 직전에 [[에밀리아노 사파타]]의 군대에서 데리고 온 유능한 [[펠리페 앙헬레스]] 장군을 반란군을 볼 수 있는 시야를 가리는 지형인 시우다델라의 북서쪽에 배속시켰다. 설상가상으로 이 지역에는 여러 국가의 [[대사관]]과 민가가 밀집되어 있었다. 이는 의도적으로 연방군의 포격으로 멕시코시티를 파괴하고 그 책임을 마데로에게 돌리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