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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9년]] 당시 고후(甲府) 번주인 도쿠가와 쓰나도요(후일의 쇼군 [[도쿠가와 이에노부]])와 혼인하였다. 부부 관계는 원만하여 둘 사이에서 장녀 도요히메(豊姫)와 장남 무게쓰인(夢月院)이 태어났으나 모두 요절하였다.
 
[[1709년]] 이에노부가 6대 쇼군으로 취임하면서 [[미다이도코로]](御台所)가 되었으나 이후에는 자녀를 얻지 못하였다. [[1712년]] 이에노부가 사망하자 삭발한 뒤 원호를 덴에이인이라 하였다. 이에노부의 측실 겟코인(月光院)이 낳은 아들 [[도쿠가와 이에쓰구]](徳川家継)가 7대 쇼군이 되면서 조정으로부터 종 1위(従一位)의 관직을 하사받아 「이치이 님(一位様)」으로도 불렸다.
 
이에쓰구의 생모인 겟코인과는 사이가 나빠 에지마 - 이쿠시마 사건(江島生島事件)을 일으켜 겟코인의 심복이자 당시 오오쿠 총책임자였던 [[에지마]](絵島)를 축출, 겟코인의 세력을 약화시켰으며 [[로주]](老中), [[후다이 다이묘]](譜代大名)들과 결탁하여 당대의 권력자들이었던 [[소바요닌]](側用人) [[마나베 아키후사]](間部詮房),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 등의 실각을 꾀하는 등 정치적인 영향력 또한 행사하였다. 그러나 이후 겟코인과의 사이는 어느 정도 회복되어 이에쓰구가 병으로 위독한 상태에 빠지자 겟코인을 직접 위로하기도 하였다.
 
[[1716년]] 이에쓰구가 사망한 뒤 기슈(紀州) 번주인 [[도쿠가와 요시무네]](徳川吉宗)가 8대 쇼군으로 취임하는 데에도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러한 공적과 더불어 요시무네에게 살아 있는 정실이 없었던 탓에 생애 전반에 걸쳐 [[오오쿠]] 내에서 권력을 유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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