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에 히로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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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1679년]] 당시 고후(甲府) 번주인 도쿠가와 쓰나도요(후일의 쇼군 [[도쿠가와 이에노부]])와 혼인하였다. 이 혼인에 대해 덴에이인의 아버지 모토히로는 자신의 일기인 「모토히로 공기(基熙公記)」에서 「무가(武家)와의 혼인을 금하는 선조의 유언을 거역하게 되었다」라고 기록하며 「설령 걸식을 하게 되더라도 (혼인을) 승낙할 수 없다」라고 덧붙여 딸의 혼인이 자신의 본의가 아님을 분명히 하였으며, 이에노부와의 혼담에 앞서 실제로 미토(水戶) 도쿠가와 가문에서 번주 [[도쿠가와 미쓰쿠니]](徳川光圀)의 후계자인 [[도쿠가와 쓰나에다]](徳川綱條)로부터 혼담이 왔을들어왔을 때는 이를 분명하게 거부하기도 하였다.<ref>그러나 모토히로의 백모 고노에 히로코(近衛尋子)가 도쿠가와 미쓰쿠니의 정실이었으므로 실제로 고노에 가문에 무가와의 혼인을 금하는 선대로부터의 유언이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ref> 이러한 배경과는 별개로 부부 관계는 원만하여 이에노부와 덴에이인의 사이에서는 장녀 도요히메(豊姫)와 장남 무게쓰인(夢月院)이 태어났으나 모두 요절하였다.
 
[[1709년]] 이에노부가 6대 쇼군으로 취임하면서 [[미다이도코로]](御台所)가 되었으나 이후에는 자녀를 얻지 못하였다. [[1712년]] 이에노부가 사망하자 삭발한 뒤 원호를 덴에이인이라 하였다. 이에노부의 측실 겟코인(月光院)이 낳은 아들 [[도쿠가와 이에쓰구]](徳川家継)가 7대 쇼군이 되면서 조정으로부터 종 1위(従一位)의 관직을 하사받아 「이치이 님(一位様)」으로도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