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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스님. 진흥왕 때 [[웅주]](熊州) 사람.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세속과 어울리지 않고 깨끗한 행을 닦다. 뒤에 중국 [[진 (남조)|진(陳)나라]]에 가서 형산의 [[혜사]](慧思)에게 『법화경』 안락행품을 배우고, 연구 통달. 법화 삼매를 증득하고</ref> 그러나 한국의 고대 불교 전공 학자들에 따르면 현광이 [[백제]]의 승려인 것이 확실하다.<ref name="글로벌-현황"/><ref name="안계현-현광-p15">안계현 (1983), 《한국불교사상사연구》, 동국대학교 출판부, p.15.:
:해동의 웅주 또는 웅천이라 하면 백제의 구도인 오늘의 충청남도 공주를 가리킨다. 현광이 그 웅주에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후에 그가 중국에서 돌아와 자리잡은 곳도 웅주였다. 더우기 그가 사사했던 천태종 제2조 혜사가 광주 대소산으로부터 남악형산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진 광대 2년(568)의 일이었고, 그후 태건 9년(577)에 임종할 때까지 전후 10년간을 내내 그 형산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므로 현광이 형산의 혜사에게 배우고 귀국한 것은 바로 이 무렵의 일이 되는 셈이다. 이 무렵의 해동 웅주인이 백제인이었음은 너무나 명백한 일이다. (중략) 그런데 일찌기 1930년에 홀활곡쾌천사(忽滑谷快天師)가 신라승이라고 발설한 이래 아무런 검토와 비판없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현광을 신라승으로 다루어 온 경향이 짙었다.</ref><ref name="고익진-현광">고익진 (1989). 《 한국 고대 불교 사상사》, 동국대학교 출판부, p. 106.:
:고구려승 반야가 천태지의의 교시를 받고 천태산 화정봉에서 16년간(598~613) 수선한 뒤 하산{{.cw}}입적 했다는 것은 앞서 소개한 바와 같다. 그런데 백제의 현광은 그보다도 앞서 진의 남악 형산에 들어가 그곳 혜사(천태종 제3조, 515~577)에게 "법화안락행문" 밀수받고 "법화삼매"를 증한다.</ref>
 
현광은 [[웅주]](熊州: [[백제]]의 옛 수도였던 지금의 [[충청남도]] [[공주시]]<ref name="안계현-현광-p15"/>)에서 태어났으며, 중국 [[진 (남조)|진나라]](陳: 557~589)에 가서 중국 [[천태종]]의 종조인 천태지자대사(天台智者大師) [[지의]](智顗: 538-597)의 스승이었던 남악대사(南嶽大師) [[혜사]](慧思: 515~577)<ref name="운허-慧思(혜사)">운허 & 동국역경원. [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D%98%9C%EC%82%AC&rowno=9 "慧思(혜사)"], 《불교 사전》. 2011년 3월 23일에 확인.</ref><ref name="운허-南嶽(남악)">운허 & 동국역경원. [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link=DGUL_BS_T_002607 "南嶽(남악)"], 《불교 사전》. 2011년 3월 23일에 확인.</ref><ref name="글로벌-천태종">[[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세계의 종교/불 교/불교의 분파#천태종|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분파 > 중국불교의 종파> 천태종]],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로부터 [[법화삼매]](法華三昧)를 배우고 돌아와서 [[웅주]](熊州) 옹산(翁山)에 절을 짓고 [[법화]]를 전함으로써 한국의 [[법화종]](法華宗)의 조사가 되었다.<ref name="글로벌-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