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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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국적 불명의 승려로,<ref name="글로벌-아도2">[[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동양사상/한국의 사상/삼국시대의 사상/삼국시대의 불교사상#아도|동양사상 > 한국의 사상 > 삼국시대의 사상 > 삼국시대의 불교사상 > 아도]],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 승려는 [[눌지 마립간|눌지왕]](재위 417~458) 때 고구려에서 [[신라]]로 건너와 불법을 전했다.<ref name="글로벌-아도2"/> [[소지 마립간]](재위 479~500) 때 시자(侍者) 3명을 데리고 일선군(一善郡) 모례(毛禮)의 집에 머무르다가 죽었다. 이 두 번째 인물과 첫 번째 인물이 동일인인지 아니면 동명이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ref name="글로벌-아도2"/> 이 두 번째의 아도가 신라에 전한 불교는 이후 [[법흥왕]](재위: 514-540) 때 [[이차돈]]이 순교하여 이적을 보임으로써 널리 퍼지게 된다. 그의 행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해동고승전]]》에 나와 있다.
세 번째 기록은 《[[삼국유사]]》에 나오는데, 이에 따르면 아도는 [[고구려]]의 승려로, 5세에 출가하여 16세 때 [[위 (삼국)|위(魏)]]에 가서 아버지 굴마(堀摩)를 찾아 뵙고, 19세 때 다시 고구려에 돌아와 어머니 고도령(高道寧)의 명을 받들어 [[미추왕]] 2년([[263년]])에 [[신라]] 왕가에 [[불교]]를 전파하려다 실패했다.<ref name="글로벌-아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고대사회의 발전/삼국의 성립과 발전/고대문화의 발전#아도|한국사 > 고대사회의 발전 > 삼국의 성립과 발전 > 고대문화의 발전 > 아도]],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 그 후 3년 동안 일선현(一善縣, 善山) 모례(毛禮)의 집에 숨어 있었으나 미추왕의 딸 성국공주의 병을 고쳐준 공으로 그때부터 불교의 전도를 허가받고 흥륜사(興輪寺)를 지었다.<ref name="글로벌-아도"/> 미추왕이 죽은 후 사람들의 미움을 사 다시 모례의 집에서 땅굴을 파고 들어앉아 죽었다.<ref name="글로벌-아도"/> 이 인물이 행적이 유사한 [[묵호자]](墨胡子)와 동일인물인지는 불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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