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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뜻|플럭서스 뮤직||음반기획사}}
'''플럭서스'''(Fluxus)는 1960년대의 전위적인 미술의 한 방향이었다. 그 시초는 [[리투아니아]]계 [[미국]] [[미술가]] George Maciunas가 사용한 플럭서스에서 유래한다. 그 흐름의 주요 참여자로는 [[백남준]], [[요셉 보이스]], [[존 케이지]] 등이 활약하였다.
 
플럭서스는 '변화', '움직임', '흐름'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다. 1960년대 초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일어난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으로, 플럭서스라는 용어는 리투아니아 출신의 미국인 마키우나스(George Maciunas)가 1962년 독일 헤센주(州)의 비스바덴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플럭서스-국제 신음악 페스티벌'의 초청장 문구에서 처음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삶과 예술의 조화'를 기치로 내걸고 출발한 플럭서스 운동은 이후 베를린·뒤셀도르프 등 독일의 주요 도시들과 뉴욕·파리·런던·스톡홀름·프라하·일본 등 유럽·미국·아시아 등지로 빠르게 파급되어 전세계에서 거의 동시에 나타났다. 이는 플럭서스 작가들이 여행과 서신 교환 등을 통한 교류가 가능했기 때문인데, 그들은 엽서 형태의 콜라주나 소규모 작품을 우편을 통한 상호 교류, 즉 우편미술(메일아트)을 통해 교류의 폭을 넓혀 갔다.
 
1963년 마키우나스는 뉴욕에 플럭서스 본부를 창설하고, 이듬해에는 히긴스(Dick Higgins)가 《섬싱 엘스 프레스 Something Else Press》를 설립해 1974년까지 플럭서스와 관련된 주요 서적들을 출간하는 등 이 시기를 전후해 플럭서스 운동은 전성기를 맞았다. 특히 플럭서스는 처음에는 미술에서 출발하였으나, 곧 예술의 어느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콘서트·이벤트·출판물·선언문 등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면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탈(脫)장르적인 예술운동으로 발전하였다.
 
표현 형식에서는 처음에는 다양한 재료를 혼합해 많은 미술 형식을 동시에 표현함으로써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희화적이고 개방적인 경향을 보였다. 즉 초기 이벤트들은 주로 극적인 요소 위주로 작품 활동이 이루어졌는데, 갈수록 이러한 요소들은 줄어들고 대신 구체적이고 시공간을 강조하는 개인적 경향으로 바뀌었다.
 
플럭서스 운동은 음악과 시각예술, 무대예술과 시 등 다양한 예술 형식을 융합한 통합적인 예술 개념을 탄생시켰으며, 메일아트·개념미술·포스트모더니즘·행위예술 등 현대 예술사조를 직접 탄생시키기거나 여러 예술 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대표적인 플럭서스 예술가로는 마키우나스·히긴스·케이지(John Cage)·보이스(Joseph Beuys)·블록(Rene Block)·무어맨(Charlotte Moorman)·존슨(Ray Johnson)·백남준(白南準)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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