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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량'''(孫亮, [[243년]] ~ [[260년]], 재위 [[252년]] ~ [[258년]])은 [[오 (삼국)|오]]의 제2대 황제로[[황제]]로, [[손권]](孫權)의 일곱 번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반부인(潘夫人)이다. [[자 (이름)|자]]는 자명(子明)이다. 권신 [[손침]]을 몰아내려다 쫓겨났다.
==즉위 전==
손량은 [[손권]]의 막내 아들이었기 때문에 [[손권]]에게 총애를 받았고, 황태자 싸움으로 인해 삼남 [[손화]](孫和)와 사남 [[손패]](孫覇)가 쫓겨나거나 죽어 곧바로 태자에 봉해졌다.
==즉위 후==
손량은 [[손권]]의 막내 아들이었기 때문에 [[손권]]에게 총애를 받았고, 황태자 싸움으로 인해 삼남 [[손화]](孫和)와 사남 [[손패]](孫覇)가 쫓겨나거나 죽어 곧바로 태자에 봉해졌다. 이듬해([[252년]]), [[손권]]이 붕어하자, 9세의 나이로 제위에 올랐다.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제갈각]](諸葛恪)이 전권을 위임받았으나, 253년에 [[손준]](孫峻)이 그를 죽이고 실권을 장악했다. [[손준]]은 256년에 죽었고, 그의 사촌동생 [[손침]](孫綝)이 뒤를 이어 나랏일을 전단했다. 16세인 258년, 외척인 전씨 가문과 함께 [[손침]] 살해를 도모하였으나 발각, 회계왕으로 봉해지며 쫓겨났고, 그의 형인 [[손휴]](孫休)가 제위에 오르게 된다. 이후 다른 곳으로 이송되던 중에 자살하였다.
 
[[태평 (오)|태평]] 2년([[257년]]) 4월, 대사령을 내리고 친정을 시작했다.
손량은 [[손권]]의 막내 아들이었기 때문에 [[손권]]에게 총애를 받았고, 황태자 싸움으로 인해 삼남 [[손화]](孫和)와 사남 [[손패]](孫覇)가 쫓겨나거나 죽어 곧바로 태자에 봉해졌다. 이듬해([[252년]]), [[손권]]이 붕어하자, 9세의 나이로 제위에 올랐다.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제갈각]](諸葛恪)이 전권을 위임받았으나, 253년에 [[손준]](孫峻)이 그를 죽이고 실권을 장악했다. [[손준]]은 256년에 죽었고, 그의 사촌동생 [[손침]](孫綝)이 뒤를 이어 나랏일을 전단했다. 16세인 258년, 외척인 전씨 가문과 함께 [[손침]] 살해를 도모하였으나 발각, 회계왕으로 봉해지며 쫓겨났고, 그의 형인 [[손휴]](孫休)가 제위에 오르게 된다. 이후 다른 곳으로 이송되던 중에 자살하였다.
 
태평 3년([[258년]]), 외척인 태상 전상과, 장군 유승과 함께 [[손침]] 살해를 도모하였으나 발각되어, 손침의 선제공격을 받아 유승은 죽임을 당했고 전상은 사로잡혔다. 손침에게서 회계왕으로 쫓겨났다.
 
==죽음==
[[영안 (오)|영안]] 3년([[260년]]), 참언을 받아 후관후(候官侯)로 격하되었고, 후관후국으로 이송되던 중에 자살하였다.
 
재위 기간 동안 총명한 판결을 내리는 등 명군의 면모를 보였으며, [[위 (삼국)|위]]의 실권자 [[사마소]](司馬昭)를 대항해 반기를 든 [[제갈탄]](諸葛誕)을 도와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