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훈의 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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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이린|계주]]로 부임하다 ===
그 후, [[864년]]에 [[남조 (왕국)|남조]]가 [[교지]](交趾, 현 [[베트남]] 북부 일대)를 점령하면서 [[당나라]] 조정에서는 서주・사주의 2주 일대(구 무녕군 번진 관하의관하 지역)의 3천여 명의 장병들을 모집하여, 그들을 남조 방위의 최전방 지역인 옹주(邕州, 현 [[광시 좡족 자치구]] [[난닝 시]])에 주둔시키라는 조칙(詔勅)을 내렸다. 당나라와 [[토번]]의 쇠약을 지켜보고 자립하려고 했던 남조에 대처하기 위해 비적화된 서주의 교병들을 활용하려는 일석이조를 노린 명령이었다. 그들은 해당 지역이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주둔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그 기한은 일단 3년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정작 모집에 응한 인원은 약 2천 명뿐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 2천 명의 서주의 교병들 중 800명이 계주(桂州, 현 [[광시 성]] [[구이린 시]])에 부임하게 되었다.
 
=== 북쪽으로의 귀환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