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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학유·감찰·병조좌랑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에 양재도 찰방으로 삼도 순변사 [[신립]]을 따라 조령 전투에 참가했으나, 신립이 패하자 강화에 들어갔다가 체찰사 [[정철]]의 종사관이 되었다. [[조선 광해군|광해군]]이 즉위하자 [[대사헌]]으로서 세자 책봉 주청사가 되어 [[명나라|명]]에 다녀왔다. 선조로부터 [[영창대군]]을 보필하라고 부탁 받은 7대신 중의 한 사람으로, [[1613년]] 계축옥사 때에 유배되었다. [[인조반정]] 후 다시 등용되어 [[우의정]]을 지냈으며, [[정묘호란]] 때 세자를 모시고 전주에 피란갔다가 돌아와서 [[영의정]]이 되었다. [[장유]]·[[이식]]과 함께 조선 중기 한문학의 태두로 일컬어진다. 저서로 《상촌집》, 《산중독언》, 《야언구정록》 등이 있다.
 
 
아들로는 신익성(선조의 부마), 신익전(숭선군의 장인)등이 있고, 사위로는 박의(박동량의 아들이자 박세채의 아버지)와 박호가 있는데, 박의와 박호는 사촌간이다.
 
 
 
{{토막글|한국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