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후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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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안 20년([[215년]]), 조조는 [[한중]](漢中)을 공격하였다. 장로는 항복하고자 했으나, 그의 아우인 [[장위 (후한)|장위]](張衛)가 따르지 않아 장위와 장수 [[양앙]](楊昻)이 수만 명을 거느리고 양평관에서 저항했다. 양평관이 함락되자 투항하려 하였으나, 염포의 의견에 따라 파중으로 후퇴하여 항거하였다. 떠날 때 측근에서 창고와 재화를 불태우고 떠나기를 원했는데, 장로가 “보화와 창고는 국가의 소유다.”라고 하고 그저 봉해 놓고 떠났다. 조조는 한중을 점령한 후, 한녕군이란 이름을 옛날의 한중군으로 되돌렸다. 11월, 장로는 드디어 조조에게 항복했다. 장로의 본의는 저항하는 것은 아니었으며, 또 창고를 태우지 않은 것을 들은 조조는 장로를 매우 칭찬하였다. 조조는 사람을 보내 장로를 위로하고 진남장군(鎭南將軍)에 임명하고 빈객의 예로 대우했으며, 낭중후(閬中侯)로 삼아 식읍 만 호를 주었다. 또 다섯 아들과 염포를 열후에 봉하고, 딸은 [[조우]](曹宇)의 아내로 삼았다. 죽은 후 시호를 내려 원후(原侯)라 했으며, 아들 장부(張富)가 뒤를 이었다.
 
장로가 숨을 거둔 해는 건안 21년([[216년]])으로, 시신은 [[업]](鄴)의 동쪽에 매장되었다. [[감로]](甘露) 4년([[259년]])에 물난리로 관이 열렸는데, 시신이 썩지 않아 마치 살아있는 사람과 같았다.<ref>허밀(許謐) · 허홰(許翽), 《진고(眞誥)》 권4</ref>
 
== 《삼국지연의》의 장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