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익: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Tarantius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Pandira (토론 | 기여)
15번째 줄:
민영익은 민비의 후광을 업고 18세에 과거에 급제해 이듬해 이조참의(정3품)에 제수되는 등 파격적으로 승진했다. 불과 약관의 나이에 병권, 재정권, 외교권을 장악해 명실상부한 민씨 척족의 수장이자 조정의 최고 실력자로 등극했다.
 
[[파일:1883년조선주미보빙사절단02.jpg|thumb|180px|right|[[1883년]] [[9월]] [[미국]]에 파견된 [[조선]]의 보빙사절단원, 앞줄 왼쪽 두번째와 세번째가 홍영식, [[민영익]], 왼쪽 세 번째가 [[유길준]]]]
 
권지 협판교섭통상사무로 [[톈진]]에 파견되어 해관사무를 교섭하다가 [[1883년]] [[5월]] 주한(駐韓) 미국 공사 푸트가 조선에 부임하자 그해 7월 고종은 미국으로 보빙사(報聘使:답례 사절)를 파견한다.<ref name="jy200905">[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609789 민영익 등 보빙사 큰절로 禮 갖춰] 중앙일보 2009.05.16일자</ref> 민영익은 [[보빙사]]의 정사 및 전권대신이 되어 사절단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하였다. [[태평양]]을 건너고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미주 대륙을 횡단한 다음 뉴욕에서 [[체스터 A. 아서|체스터 아서]] 미국 대통령과 회동하고 국서를 전하였다. [[보스턴]] 등 각지를 순회하고 [[유럽]]을 거쳐 귀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