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학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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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아베이와 카룸 다른 감옥에는 반혁명적인 성직자가 수용되어 있었다. 혁명 선서를 거부하고 붙잡혀 있던 성직자들도 있었지만, 정치에 관련되었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흥분한 민중 무리가 먼저 아베이 감옥에 몰려가 수용되어 있던 23명의 성직자를 살해하고, 이어 카룸 감옥에 다니면서 150명의 성직자의 대부분을 살해했다.
 
학살은 며칠동안 계속되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앙투아네트]]와 운명을 함께하기 위해 귀국하여 체포된 [[랑발르 공작 부인도부인]]도 비참하게 죽었다. 군중은 그녀의 시체에서 옷을 벗겨내 신체를 절단하고 유린했다. 어떤 무리는 창 끝으로 그녀의 머리를 찔러 [[떵플 탑]] 앞에서 왕비에게 보여주며 시위를 했다.
 
이 학살의 결과 파리의 감옥은 비게 되었다. 몇 일간의 폭력으로 희생된 사람은 추계 1,100명에서 1,400명이었다. 희생자 가운데 원래 살해 대상이었던 반혁명 정치범은 전체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또한 비슷한 학살이 전후하여 각지의 도시에서도 일어났다. 그 희생​​자의 총계는 14,000에서 16,000에 이른다고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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