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롱 포위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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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찰 결과에 따라 나폴레옹은 르 스케일 언덕(카이로 언덕)을 점령하여 레기에트와 발라기에 요새를 공략할 계획을 짰다. 그 요새는 툴롱 내항과 외항을 차단하는 위치에 있고, 포위에 필수적인 바다에서 보급을 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별로 내켜하지 않던 카르토는 마지못해 들라보르도 소장 휘하의 경미한 지원군 밖에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9월 22일]]에 시도된 공격은 실패했다. 르 스케일 언덕(카이로 언덕)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게 된 영국- 스페인 연합군은 정상에 새로운 요새를 구축하고, 방위사령관의 이름을 따서 멀그레이브 요새라고 불렀다. 그것은 3개의 작은 거점에 세워진 견고한 요새였으며, 영국 측은 “작은 지브롤터”라고 불렀다.
 
[[9월 19일]]부터 나폴레옹은 셍 로랑의 고지대에 있어, 간단하게 “산”이라고 부르는 고립된 포대는 불충분하다고 생각했다. [[9월 21일]], 그는 내항 서부 브레갈리욘브레갈리옹(Brégallion) 해안에 “생“[[생 퀼로트”라고퀼로트]]”라고 부르는 또 다른 포대를 구축했다. 후드 제독은 포대를 제거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게다가 동해안의 무리욘(Mourillon)과 라 투르 후아얄(la Tour Royale) 쪽의 수심이 얕았기 때문에, 영국 함대는 다른 해안을 따라 포진할 수 밖에 없었다. [[10월 1일]], 라 포이프 장군이 펄롱 산 “동쪽의 요새”를 공략하려다 실패한 후, 나폴레옹은 도시를 공략하기 위해 함락시켜야 하는 마르브스케 대 요새의 포격을 요청했다. 그는 주변 지역에서 포병을 집합시켜 각각 6문의 대포를 가진 50개의 포대를 정렬시켰다. [[10월 19일]], 나폴레옹은 대대 지휘관으로 승진하였고, 아레네 언덕 위에 요새를 겨냥한 포대 “국민 공회의 포대”를 구축했다. 그 포대를 듀몬소(Dumonceau)의 언덕 “공화파의 캠프” 고(Gaux)의 언덕 “파리니에르(Farinière)”, 라고브란(Lagoubran)의 “화약고” 등을 통해 지원하였다.
 
===듀고미에의 부임과 공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