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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프랑스는 거듭된 전쟁과 기근으로 경제가 파탄할 지경에 이르렀고,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그때까지 과세를 면제해 온 [[제1신분]](성직자)와 [[제2신분]](귀족)에 과세를 할 수 밖에 없었고, [[루이 16세]]는 새로운 과세 제도를 규정하기 위해 신분제 의회인 《[[삼부회]]》를 175년만에 소집했다. 이에 반발한 제1신분과 제2신분은 삼부회에서 분리 심의와 신분별 투표를 주장했고, [[제3신분]](평민)은 합동 심의와 인원별 투표를 주장하면서 격렬하게 대립했다.
 
[[1789년]] [[6월 10일]] 의결 방법을 둘러싸고 분규를 거듭한 삼부회에 대해 “때는 왔다. 닻줄을 잘라라!”라는 [[에마뉘엘 조제프 시에예스|시에예스]] 연설로 제3신분은 독자적인 행동을 취할 것을 선언하고 [[6월 17일]]에는 제3신분[[오노레 가브리엘 리케티 미라보|오노레 가브리엘 미라보]]가 이끄는 제3신분은 스스로 집회를 열고,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국회’(National Assembly)<ref>P105, Doyle, William The Oxford History of the French Revolution (1989)</ref>라고 칭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독자적으로 심의를 진행시킨 제3신분의 행동에 개명파의 성직자들과 일부 귀족들도 점차적으로 합류하기 시작했다.
 
[[6월 19일]]에는 격론 끝에 마침내 제1신분 의원이 제3신분의 심의에 합류하기로 결정했지만, 이에 위협을 느낀 왕의 동생 [[아르투와 백작]] 등 강경파가 국왕을 재촉하여 한밤 중에 제3신분 회의장은 폐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