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포레토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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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초반의 엄청난 피해에 겁을 먹은 이탈리아군 최고 사령부에서는 독일의 또 다른 공세가 시작되기 전에 계속 그 지역의 전군에 대해 후퇴를 명령하게 되고 아직 완벽한 보급라인이 구축되지 않은 동맹국측으로서는 거의 피해없이 진격을 계속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11월 10일]]까지 후퇴를 계속해 [[베니스]]로부터 겨우 30km떨어진 [[피아베 강|피아베(Piave)강]]까지 후퇴해 그곳에서 전열을 가다듬게 된다. 오히려 이탈리아군의 너무 빠른 후퇴로 인해 전진속도를 맞추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 전투에서의 대규모 후퇴로 인해 이탈리아군은 20만명여의 피해를 입게 되는데 이중 90%가 포로였다. 또한 많은 수의 포를 잃었고 연합국측에서는 상당히 놀라게 된다. 따라서 이탈리아군 최고사령과이자최고사령관이자 수상이었던 까또르나는 해임되고 [[아르만도 디아츠]](Armando Diaz)장군이 새로운 최고사령관으로 임명된다. 또한 수상에는 [[비또리오 올랜도]](Vittorio Orlando)가 임명된다. 전쟁장관에는 보셀리(Boselli)가 임명되어 연합국측으로부터 즉각적이고 강화된 지원을 약속받게 된다.
 
카포레토 전투 전까지 이탈리아군은 단독으로 오스트리아군과 전투를 벌여왔으나 독일군의 투입과 카포레토 전투의 대 재앙으로 인해 이 정책을 포기하게 된다. 따라서 연합국은 프랑스군 6개사단과 영국군 5개사단을 비롯하여 많은 수의 양국 비행편대와 보급지원 부대들을 이탈리아에 배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