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신학교와 원효로성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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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이 위치한 곳은 한강을 바라볼 수 있던 함벽정이 있던 곳이었다. 지척으로 병인박해 때 성직자들이 참수된 새남터와 [[기해박해]] 에 많은 천주교도들이 피를 흘린 당고개가 보이는 곳이었다. [[파리외방전교회]]는 [[한불수호조약]]이 체결된 해인 [[1887년]]에 이곳을 매입하였다.
[[1891년]] [[4월 7일]] [[신학교]] 신부들과 지방 신부들의 바램에바람<!--바램 아님-->에 의하여 신학교를 건축하기로 결정하였다. [[1891년]] [[5월 6일]] 신학교 정초식이 서울의 모든 신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으며, [[1892년]] [[6월 25일]] 축성식이 있었다. 이날은 신학교의 주보인 예수 성심축일이었다. 이 건물은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학교 건물이 되었다. [[1928년]] 이 신학교가 혜화동으로 이전함에 따라 이 건물은 성직자 휴양소로 사용되었다. [[1956년]] [[성심수녀회]]가 한국에 진출함에 따라 이 수녀원에 양도되었다. 신학교 건물은 프랑스 외방전교회 소속 코스트신부가 설계와 감독을 하였고, 청국인이 시공하였다.
 
{{서울시공개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