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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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의 살포는, 명목상으로는 [[말라리아]]를 매개로 하는 [[모기]]나 [[거머리]]를 퇴치하기 위해 살포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베트콩이 은신한 삼림의 고사시키고, [[게릴라]] 장악 지역의 농업 기반인 경작지 파괴가 목적이었다. 고엽제는 [[1961년]]부터 [[1975년]]에 걸쳐 게릴라의 근거지인 사이공 주변이나 [[떠이닌 성]]이나 [[박리에우 성]]의 등지에 대량으로 살포되었다. 미국 재향군인국의 자료에 확인 가능한 양은 83,600,000 리터의 고엽제가 살포되었다. [[콜롬비아 대학]]의 진 스테르만의 조사에서는 살포 지역과 당시의 취락 분포를 아울러 조사한 결과, 400만명의 베트남인이 고엽제에 노출되었다고 폭로했다고 하고 있다.
 
[[1969년]] 6월 말 [[사이공]]의 일간지 《틴 산》은 고엽제 살포 지역에서 출산 이상의 증가에 관한 연재를 시작하였다, 당국은 곧 발매 금지 처분을 했다. 같은 해 [[11월 29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연례 총회에서, 하버드 대학의 매튜 메세루슨, 바우만 등이 살포 지역의 출산 이상의 급증에 대한 보고가 이뤄졌다. 그 보고서는 [[1959년]]부터 [[1968년]] 기형아 출산 4,002건을 확인하고 보급이 강화된 [[1966년]] 이후, 선천성 구개파열이 급증하고 있으며, 기형아 출산율이 사이공에서 1,000명 중 26명, 집중 살포 지역인 [[떠이닌 성]]에서는 1000명 가운데 64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또한 살포 지역의 모유의 다이옥신 농도가 최고 1450ppt로 조사되었고, 평균 484ppt에 달했으며, 비살포 지역의 성에 비해 매우 높은 오염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보고되었다. [[1972년]] 6월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 환경 회의유엔환경계획]]에서 고엽제 살포가 주요 의제가 되었고, 미국의 비판적인 과학자들로부터 베트남의 기형아 출산 증가를 포함하여 방대한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베트남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