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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랄트 괴팅'''({{llang|de|Gerald Götting}}, [[1923년]] [[6월 9일]] ~ )은 전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의 [[기독교 민주연합 (동독)|기독민주연합]] 정치인이다.
 
[[작센 주|작센]]의 니틀레벤(현재 [[할레]])에서 출생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제2차 세계대전]] 중에 보조후원공급기구인 국가노동부국에 근무하였다가, 후에 [[독일 국방군|베르마흐트]]에서 복무하였다. [[1945년]] [[미국의 군사|미군]]의 포로로 간단히 잡혔다.
 
[[1946년]] 보수적 정당인 기독민주연합에 입당하고나서, [[할레-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2년동안 독일학, [[역사학]], [[언어학]]을 수학하였다. [[1949년]] 기독민주연합의 당서기가 되었고, [[소비에트 연방]] 점령의 [[독일 민주 공화국]] 설립 후에 [[국민의회]]의 단원으로서 자신의 경력을 시작하였다.
그 시기에 괴팅은 동독의 영향적 지위들 - 국민의회 기민련 당파 의장(1949~63), 부총리(1958~63), 국가의회 부의장(1963~89)을 지내왔다. 또한 국민의회 의장(1969~76)과 그 부의장(1969~89)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결국 [[1966년]] 기민련의 향상에서 그 의장이 되었다.
 
의장으로서 구민 전선을 형성한 다른 정당들과 가까운 일을 하였고, 자신의 당수 재임 동안에 [[독일 통일사회당|통일사회당]]과 함께 [[기독교]]와 [[사회주의]] 간의 관계를 조사하는 [[팸플릿|팜플렛]]을 발간하였다.
 
괴팅은 동독 사회에서 다른 직위를 지내왔는 데, [[1961년]]부터 [[1969년]]까지 독일-[[아프리카]] 학회의 부회장을 지내면서 [[1963년]] [[알베르트 슈바이처]] 협회의 회원이었다. [[1976년]]에는 동독 인민우호연맹의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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