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1,282 바이트 추가됨 ,  10년 전
[[심정 (1471년)|심정]]은 [[홍경주]]를 시켜 밀서를 가지고 실의(失意)한 여러 재상들에게 찾아가 조광조를 죽일 것을 모의케 하자 [[홍경주]]는 [[영중추부사]] [[김전]](金銓) 등과 함께 몰래 왕에게 글을 보내어 상변하려고 해도 왕을 모신 근시(近侍)가 모두 조광조의 심복이므로 어쩔 도리가 없으니 신무문(神武門)을 열어 밤중에 들어가 상변하겠다고 청했다.
 
=== 주초위왕 사건과 최후
드디어 [[음력 10월 15일]] 밤 [[홍경주]]·[[김전]]·[[남곤]]·[[이장곤]](李長坤)·[[고형산]](高荊山)·[[심정 (1471년)|심정]]·홍숙(洪淑)·손주(孫澍)·방유령(方有寧)·윤희인(尹希仁)·김근사(金謹思)·성운(成雲) 등은 신무문으로 궐내에 들어가 왕께 입대하고 조광조 등이 당파를 조직하여 구신들을 몰아내고 나라를 뒤집어 놓았으니 그 죄를 밝혀 달라고 주청하였다.
중종 임금에게 한 궁녀가 궁궐의 나뭇잎 하나를 가져다 바친다. 벌레가 갉아먹은 자리를 따라 나뭇잎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주초위왕(走肖爲王)> , 조씨(走+肖=趙)가 왕이 된다는 글이다.<ref name="deok42">이덕일,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 (석필, 1997) 42페이지</ref>
 
"조광조의 역심(逆心)을 하늘이 알려준 것이옵니다.<ref name="deok42"/>"
그리하여 조광조를 위시하여 참찬 [[이자]](李耔)·형조 판서 [[김정 (1486년)|김정]](金淨)·대사성 [[김식]](金湜)·부제학 [[김구 (1488년)|김구]](金絿)·도승지 [[유인숙]](柳仁淑)·승지 [[박세희]](朴世熹)·응교 [[기준]](奇遵)·수찬 [[심달원]](沈達源)·공서린(功瑞麟)·윤자임(尹自任)·안정(安挺)·이구(李構)·[[홍언필]](洪彦弼)·박훈(朴薰) 등이 체포되었다. 처음에 [[홍경주]] 등은 그날 밤으로 모두 죽일 계획이었으나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우의정 [[안당]](安塘)·신임 대사헌 유운(柳雲)·신임 대사간 윤희인(尹希仁)·전한(典翰) 정응(鄭應)·봉교(奉敎) 채세영(蔡世英) 등의 역간(力諫)으로 일단 취조를 받게 되었다.
 
반정으로 등극한 중종은 자신 역시 쿠테타로 축출될수 있다는 생각을 하여, 이복 형제들, 성종의 다른 왕자군이나 기타 왕족들을 불신하고 경계했다.
 
반정으로 등극한 중종은 조광조를 의심하나, 나뭇잎의 글씨는 궁녀가 과일즙을 발라놓은 자리를 개미들이 파먹은 것에 불과한 것이다. 말하자면 음모이다.
<ref name="deok42"/>
 
그날 밤, 홍경주와 남곤, 심정 등은 은밀히 입궐해 중종을 만나 주청한다.
"조광조가 붕당을 만들어 국정을 어지럽히고 있사오니 이들을 처단해야 합니다."
중종은 조광조, 김식, 김구 등 사림파를 투옥시킨다.<ref name="deok42"/> 드디어 [[음력 10월 15일]] 밤 [[홍경주]]·[[김전]]·[[남곤]]·[[이장곤]](李長坤)·[[고형산]](高荊山)·[[심정 (1471년)|심정]]·홍숙(洪淑)·손주(孫澍)·방유령(方有寧)·윤희인(尹希仁)·김근사(金謹思)·성운(成雲) 등은 신무문으로 궐내에 들어가 왕께 입대하고 조광조 등이 당파를 조직하여 구신들을 몰아내고 나라를 뒤집어 놓았으니 그 죄를 밝혀 달라고 주청하였다.
 
그리하여 조광조를 위시하여 참찬 [[이자]](李耔)·형조 판서 [[김정 (1486년)|김정]](金淨)·대사성 [[김식]](金湜)·부제학 [[김구 (1488년)|김구]](金絿)·도승지 [[유인숙]](柳仁淑)·승지 [[박세희]](朴世熹)·응교 [[기준]](奇遵)·수찬 [[심달원]](沈達源)·공서린(功瑞麟)·윤자임(尹自任)·안정(安挺)·이구(李構)·[[홍언필]](洪彦弼)·박훈(朴薰) 등이 체포되었다. 처음에 [[홍경주]] 등은 그날 밤으로 모두 죽일 계획이었으나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우의정 [[안당]](安塘)·신임 대사헌 유운(柳雲)·신임 대사간 윤희인(尹希仁)·전한(典翰) 정응(鄭應)·봉교(奉敎) 채세영(蔡世英) 등의 역간(力諫)으로 일단 취조를 받게 되었다. 의심 많은 왕 중종은 조광조에게 사약을 내린다.<ref name="deok42"/>
 
결국 조광조·[[김정 (1486년)|김정]]·[[김구 (1488년)|김구]]·[[김식]]·윤자임·[[박세희]]·[[기준]]·박훈 등 8명 중 조광조는 능주(綾州 :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화순]])에 귀양 가, [[음력 12월 20일]] 결국 사약을 받고 숨졌다. 이때 [[이순신]](李舜臣)의 친조부인 이백록도 숨졌다.

편집

2,140